[신화수 칼럼] `마당`을 나와야 할 우리 사회와 대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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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 극장 애니메이션 ‘마당을 나온 암탉’의 돌풍이 거세다. 개봉 열흘 남짓에 관람객 78만명을 돌파했다. ‘로봇태권브이 디지털복원판’이 보유한 한국 애니메이션 최고 흥행기록도 깼다. 이번 주 100만 돌파가 확실하다. 상영관을 잡기는커녕 1년에 1편 개봉도 어려운 척박한 풍토에서 거둔 대단한 성과다. 더욱이 지명도와 3차원(D)을 앞세운 일본과 할리우드 흥행작과 당당히 겨뤄 이겼다.

 성공 비결은 ‘스토리’다. 원작은 황선미 작가의 동명 동화다. 한 번도 자기 알을 품어본 적이 없는 암탉, ‘잎싹’이 양계장을 뛰쳐나간 모험 이야기다. 황 작가는 더 큰 세상을 향한 갈구와 도전, 다름을 인정하는 관용, 자유와 사랑, 삶과 죽음이란 어려운 주제를 잘 풀어냈다.

 원작이 있는 영화는 원작보다 평가를 받지 못하기 마련이다. 110만부가 팔리고 초등 5학년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명한 원작이라면 더 부담스럽다. 애니메이션 전문 제작사 오돌또기와 영화 제작사 명필름은 원작에 없는 캐릭터와 장면을 추가해 원작이 가진 스토리의 힘을 그대로 살렸다.

 이 애니메이션 설정과 캐릭터는 곧 우리의 자화상이다. 아기 청둥오리 ‘초록’을 지극 정성으로 키우는 잎싹과 무뚝뚝해도 책임을 다하는 파수꾼 청둥오리 ‘나그네’는 우리 부모세대를 빼닮았다. ‘초록’은 철없어 보여도 나름 제 할일 찾는 우리 젊은이들이다. ‘잎싹’이 어미 잃은 오리 알을 품는 장면에선 어느덧 우리 곁에 다가온 ‘다문화사회’가 보인다. ‘잎싹’의 마지막 선택에선 다음 세대 밑거름이 되려는 올곧은 기성세대의 저력을 본다.

 양계장은 과거에 얽매인 규제와 관습에 찌든 우리 사회와 무척 닮았다. 창의적인 도전을 짓누르는 산업 생태계나 대기업이기도 하다. 양계장 닭들은 ‘잎싹’의 도전을 무모하게 여긴다. 마당의 가축들은 그릇된 관행과 서열에 목맨다. ‘엉뚱한 생각 하지 말고 하던 대로 가’에 익숙한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좁은 마당 너머 드넓은 습지는 비록 생존 경쟁이 치열할지라도 평가만큼 공정한 세상이다. 양계장과 좁은 마당은 실력보다 출신과 줄서기가 앞선 한국사회다. 습지는 실력만 있으면 기회를 주는 세계 무대다. 마당엔 대기업 하청 기업이 산다. 때 되면 나오는 풀을 먹을 수 있지만 고삐가 매여졌다. 습지엔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기업이 산다. 언제 천적이 나타날지 모르나 원하는 곳에서 마음껏 풀을 뜯어먹는다. 어느 게 더 좋으냐, 나쁘냐 말할 수 없다. 선택의 문제다.

 ‘마당을 나온 암탉’의 성공은 ‘현재진행형’이다. 손익분기점까지 갈길이 바쁘다. 한 작품이 성공했다고 우리 애니메이션 산업이 드디어 정상궤도에 올랐다고 들뜰 때가 아니다. 이제 첫발을 뗐을 뿐이다. 이 작품의 산업적 의미는 되레 제작 과정에 있다.

 오돌또기는 그림을 잘 그리나 영화 흥행 문법을 모른다. 명필름이 전문가다. 관객 누구나 공감할 시나리오로 바꿨다. 자연 섭리까지 아우르면서 선악 대립, 가족주의와 같이 도식적인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을 뛰어넘었다. 오돌또기 홀로 불가능한 투자 유치도 했다.

 광물 덩어리에서 보석을 캐낸 명필름이 없었다면 이 작품도 이전의 토종 작품처럼 한순간 좋은 평가를 받은 그저그런 영화가 됐다. 오돌또기가 기술밖에 모르는 벤처창업가라면, 명필름은 시장 흐름과 소비자 기호를 잘 읽는 멘토 기업이다. 둘이 함께 하면 더 큰 세상에 나갈 수 있다. 대기업도 멘토를 할 수 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한 인터뷰에서 “우리 애니메이션도 좁은 마당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다름과 도전을 인정하지 않고 여전히 배타적인 우리 사회와 대기업이 우리 애니메이션보다 먼저 마당을 나와야 하지 않을까.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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