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AI 인프라 경쟁, 국가는 무엇을 설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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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동현 한성대 교수

생성형 인공지능(AI) 경쟁은 이제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 기술의 우열을 가리는 모델 경쟁은 빠르게 한계에 도달했고, 경쟁의 중심은 AI를 실제로 '굴릴 수 있는 구조'를 누가 갖추었는가로 이동하고 있다. 이 변화는 AI를 더 이상 연구개발(R&D)이나 신산업 육성의 문제로만 다룰 수 없게 만든다. AI는 이제 국가 인프라의 문제이며, 그 성패는 실행 전략과 국정 조정 능력에 달려 있다.

◇GPU 확보, '물량'이 아니라 연산 접근권(컴퓨팅 액세스)의 문제

이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2025년 10월 젠슨 황의 방한이다. 방한 기간 중 엔비디아와 한국 정부, 그리고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기업 간 논의를 통해 향후 수년간 약 26만개 규모의 최신 AI 그래픽 처리 장치(Graphics Processing Unit:GPU)를 한국에 단계적으로 공급하는 협력 구상이 제시됐다.

그러나 이 사안의 본질은 GPU '물량' 자체에 있지 않다. 26만개 GPU는 수조원대 투자와 함께 수백메가와트(MW)에서 기가와트(GW)급 전력, 초대형 데이터센터, 고신뢰 네트워크를 동시에 요구한다. GPU 확보는 곧 연산 접근권(access to compute)을 국가가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AI가 공공·안보·핵심 산업 영역으로 확산될수록, 연산 자원은 단순한 시장 거래 대상이 아니라 우선권·중단권·전환권을 포함한 전략 자산이 된다. 따라서 GPU 정책은 단기 물량 확보가 아니라, 국가 차원의 연산 거버넌스 설계로 접근해야 한다.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AI 실행의 병목

GPU가 확보되더라도 이를 가동할 인프라가 없으면 경쟁력은 실현되지 않는다. 초거대 AI 데이터센터 하나가 요구하는 전력은 수백MW에서 GW급에 이르며, 이는 기존 산업단지나 정보기술(IT) 인프라 정책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최근 데이터센터 입지, 송전망 확충, 지역 수용성 문제가 국가적 쟁점으로 부상한 이유다.

이 영역은 민간 기업의 판단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인허가 지연, 전력망 구축 기간, 주민 수용성 문제는 모두 국가 조정 영역에 속한다. AI 인프라 경쟁의 속도는 기술 개발이 아니라, 행정·전력·제도 설계의 속도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통령실과 정부는 데이터센터와 전력망을 개별 산업 현안이 아니라, 국가 AI 인프라 패키지로 다루기 시작했다. 이는 AI 정책의 중심이 연구개발(R&D)에서 국정 운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와 HBM, 한국의 구조적 지렛대

AI 실행 전략에서 한국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산은 반도체다. 특히 AI 성능 병목이 연산 능력보다 고대역폭 메모리(HBM) 대역폭으로 이동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보유한 HBM 생산 역량은 글로벌 AI 인프라의 핵심 요소가 되고 있다.

최신 AI GPU 한 장에는 100GB 이상 HBM이 요구되며, 수십만개 GPU가 투입되는 인프라에서는 메모리 공급 안정성이 곧 AI 운영 안정성으로 직결된다. 이는 한국이 GPU의 단순 소비국이 아니라, AI 반도체 가치사슬의 병목을 쥔 국가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반도체 정책 역시 개별 기업 지원을 넘어, AI 인프라 전략과 결합된 국가 차원의 구조 설계가 필요하다. HBM, 패키징, 파운드리를 AI 데이터센터·연산 정책과 연동하지 않으면, 전략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하기 어렵다.

◇한-UAE AI 동맹, 실행 전략의 국제 확장

이러한 실행 전략은 2025년 11월 공식화된 한-UAE AI 동맹에서 국제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한-UAE 협력은 기술 교류가 아니라, AI 인프라·에너지·반도체 공급망을 결합한 실행형 동맹이다.

UAE는 약 1000억달러 규모, 최대 5GW급 AI·데이터센터 인프라 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원전 5기에 해당하는 전력 규모로, 글로벌 AI 인프라 경쟁에서도 최상위 수준이다. 한국은 이 구조에서 전력 운영 경험, 데이터센터 EPC 역량, 반도체·HBM 공급 능력을 결합한 설계·운영 파트너 역할을 수행한다.

이 동맹은 AI 경쟁이 알고리즘이나 코드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연산과 전력을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는가의 문제로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한국의 AI 실행 전략이 국내를 넘어 국제 인프라 협력 모델로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정책 제언: 실행 전략의 세 가지 축

이제 AI 정책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 전략으로 평가받는 단계에 들어섰다. 이를 위해 다음 세 가지 축이 필요하다.

첫째, GPU 정책을 단기 물량 경쟁이 아니라 국가 연산 접근권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공공·안보·핵심 산업 영역에 필요한 연산 자원을 국가가 구조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데이터센터·전력망·입지 인허가를 AI 산업의 병목이 아닌 경쟁력으로 만들기 위해 패스트트랙 제도화가 필요하다. AI 인프라는 속도가 곧 경쟁력이다.

셋째, 반도체·HBM·패키징 역량을 AI 인프라 전략과 결합해, 한국을 글로벌 AI 가치사슬의 필수 실행 노드로 고착화해야 한다.

AI 경쟁의 승부는 더 이상 연구소나 발표 무대에서 결정되지 않는다. GPU, 데이터센터, 전력망, 반도체, 그리고 이를 조정하는 국가의 실행 능력이 결합될 때 비로소 경쟁력은 현실이 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선언이 아니라, AI를 국가 인프라로 작동시키는 실행 전략이다.

황동현 한성대 교수 wellness03@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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