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은 최근 한국무역협회 주최 초청강연에서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를 비판하고 엄중 제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청와대와 정부, 정치권에서 이어지고 있는 대기업 때리기 연장선이다. 출범 초기 ‘비즈니스 프렌들리’ 정책을 내세우며 규제 철폐에 앞장섰던 정부가 노선을 바꾸는 듯 한 모습을 보이자 기업은 혼란스럽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과 함께 대기업 발목을 잡는다는 출자총액 제한제를 폐지하고 수출기업을 돕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기업만 배불린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정부는 나름 확신이 있었다. ‘트리클 다운(trickle down)’ 효과 이론을 믿었다. 대기업이나 부유층의 부를 먼저 늘려주면 물방울이 아래로 떨어지는 것처럼 중소기업과 서민에게 혜택이 돌아가 경기 전체가 부양될 것이라는 논리다.
철석같이 믿었던 트리클 다운 효과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정부 내부에는 낭패와 당혹감이 넘쳐난다. 출자총액 제한 해제 등 대기업 걸림돌을 제거해 줬는데 여전히 대기업은 투자와 고용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흐르는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위에 고여만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실망감이 결국 대기업을 손보는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소모성자재 구매대행(MRO) 자회사에 대한 과세방침 등이 그것이다.
정부는 수출기업 우대나 시장주의 원칙은 지키되 부당한 기업운영과 이익 창출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견제하겠다는 논리지만 이면은 ‘대기업 때리기’라는 비판도 있다. 대기업에 대한 실망감과 내년 총선을 앞둔 정치권 전략이 함께 어우러져 대기업에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는 주장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글로벌 경기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투자에 신중할 수 밖에 없다. 정부는 대기업만 비판할 것이 아니라 정책적인 오류가 없었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트리클다운 정책은 대기업에만 초점이 맞춰져서는 안된다. 성장률 높이기에 집착해 중소기업과 창업 지원 등 고용을 적극 이끌어 낼 수 있는 미시적 산업정책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 트리클다운이 효과를 거두기 위한 신중한 정책수립과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