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에어컨 틀고 재킷 걸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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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 1월 미국 캘리포니아에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다. 시민들은 암흑 속에서 추운 겨울밤을 지새웠다. ‘공포의 밤’ 그 자체였다. 발전사들이 가격이 맞지 않는다며 판매사에 전력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석유가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전기를 많이 쓰면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었다.

 습관온도라는 말이 있다. 미국·일본·프랑스 등 선진국은 겨울철 난방으로 인한 전력 사용을 줄이기 위해 법정 실내온도를 섭씨 18.3~20도로 규정해 놓고 있다. 몇해 전 겨울, 독일의 한 가정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가족들 모두 긴팔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있었다. “요금이 너무 비싸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전기료 폭탄을 맞습니다.” 전기료에 대한 집주인의 비장함이다. 외부 기온이 영하 13도를 오르내리는데도 실내는 19도를 넘지 않았다.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19도’를 자연스레 녹여내고 있는 셈이다.

 우리 일상으로 들어와 보자. 겨울철 유치원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거주지가 아파트인지, 주택인지를 한 눈에 알아본다.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추운 주택에 사는 아이들은 따뜻한 곳에 들어갔을 때 얼굴이 붉어지는 안면홍조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가정의 겨울철 평균 실내온도는 섭씨 24도를 넘는다. 한겨울 임에도 반팔에 반바지 차림이다. 여름철 실내온도 역시 평균 22도다. 일부에서는 에어컨을 18도로 맞춰놓고 춥다고 긴소매를 걸치기도 한다. ‘피서는 은행으로 가자’던 우스갯소리가 지금은 현실이 됐다.

 이 같은 원인은 원가보다 싼 전기요금에 있다. 실제 2009년에 한국의 평균 전기요금은 1㎾h당 82.24원으로 독일(344.96원), 일본(243.50원), 영국(220.01원), 미국(122.82원) 등 주요 선진국보다 한참 낮다.

 이로 인해 석유류 소비가 전기로 대체되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가스와 석유 가격은 거의 80% 이상 올랐지만 전기요금은 겨우 15% 인상에 그쳤다. 당연히 냉난방을 위한 에너지원이 전기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방에는 전기매트, 사무실엔 온풍기, 식당엔 전기히터, 책상 밑엔 전기난로가 흔하다. 싸다고 펑펑 쓰다간 전국이 방전될 우려도 없지 않다.

 정부는 이달 중 전기요금 중장기 개편방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정책입안자들은 전기료 인상이 가계와 물가에 미칠 부작용 때문에 속앓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전기료 원가구조를 정상화해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 전기는 정부에서 저렴하게 제공하는 에너지원이 아님을 국민이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카드 명세서를 확인하듯, 전기료 명세서를 보고 지난달과 비교하는 소비자가 지금보다 더 많아져야 한다.

 에너지를 잘 써야 에너지 강국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절약 생활화는 작게는 가정 경제를 돕고 크게는 저탄소 녹색성장의 원동력이다. 낮은 전기요금은 이명박 정부가 자랑스럽게 내놓은 ‘녹색성장 정책’을 흔드는 요인이 된다. 조금 춥게, 조금 덥게 생활하면 미래의 우리 후손에게 아름답고 깨끗한 지구를 물려줄 수 있다.


 김동석 그린데일리 부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