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탄화력발전소가 ‘친환경’ ‘녹색(그린)’ ‘청정’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내걸고 경쟁적으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및 청정 설비들을 대거 도입하면서 과거 환경오염 주범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지역사회의 친환경 랜드마크로 재도약한다는 게 이들의 목표다.
화력발전소의 친환경화가 지속가능경영 및 미래 성장성의 주 평가지표로 작용하면서 발전회사들 사이에서는 이를 지칭하는 ‘그린파워’ ‘그린에코’와 같은 명칭을 놓고 은근한 신경전도 보인다.
그동안 화력발전소가 추구하던 친환경 운전은 질소산화물·다이옥신·황산화물·분진 등 대기오염 물질을 줄이고 폐수열을 조절하는 환경보호 성격의 노력이 대부분이었다. 올해는 신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이 화력발전소 친환경 운전의 핵심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2005년 서부발전이 발전회사 최초로 태안화력 유휴용지를 활용해 태양광발전소를 준공한 것을 시작으로 화력발전소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은 이제 거의 모든 발전소가 적용하는 일반적인 운영방식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유휴부지 활용해 민원 없고 인허가 빨라=보령화력(중부발전), 영흥화력(남동발전), 하동화력(남부발전), 당진화력(동서발전), 태안화력(서부발전) 등 국내 발전 5개사의 대표 화력발전소는 모두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화력발전소에서 운영하는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일반적으로 태양광과 해양소수력발전 2가지가 꼽힌다. 수 백만평 규모로 조성된 발전소는 유휴부지 및 건물 옥상 등 태양광 설비를 설치할 공간이 많다. 화력발전 운전 시 필수적으로 나오는 방류수는 해양소수력 발전과 궁합이 맞는다. 반면에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 풍력발전은 아직 도입하는 발전소가 많지 않다.
발전사들이 화력발전소 내에 경쟁적으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갖추는 것은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가 가장 큰 이유다. 내년부터 RPS 시행으로 전체 발전량 중 2%를 신재생에너지로 발전해야 하는 발전사들이 그 최적지로 기존 화력발전 부지를 지목하고 있는 것. 이는 점점 어려워지는 인허가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 많은 신재생에너지 개발이 지역주민 민원 및 지자체 인허가 취득에 어려움을 겪으며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반면에 발전소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는 인허가 문제에서 자유롭고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개발을 완료할 수도 있다. 기존 발전소의 도로와 계통연계 등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대폭 절감할 수 있는 점은 신규부지 신재생에너지 발전소가 가질 수 없는 장점이다. 현장 전문 인력들이 설비를 가까운 곳에서 운영·관리할 수 있다.
5개 발전사의 발전소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 규모를 모두 합하면 200㎿ 수준이다. 화력발전소 1기의 설비용량이 보통 500㎿를 넘는 것과 비교하면 아직 미미한 수치다. 발전사들은 내년부터 발전소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200㎿까지 확충해 전체 합계 1000㎿를 넘긴다는 계획이다.
화력발전소가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품으면서 얻게 된 또 다른 이점은 지역주민들의 인식 개선이다. 환경 저해시설로 낙인찍혀 지역 주민의 반발을 샀던 발전소는 이제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친환경 에너지 발전소로서 학생들의 주요 견학처 및 지역 신재생 중소기업의 벤치마킹 모델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테스트베드 및 발전소 내부전력 공급 등 다양한 활용=발전사들은 발전소 내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향후 구축할 대규모 단지의 실증모델로 활용하고 있다. 남동발전의 경우 영흥화력에 국책과제로 추진하는 국산 풍력 실증단지 조성을 위해 22㎿급 풍력단지를 구축했다. 영흥화력 유휴부지를 활용해 추진 중인 30㎿의 국산풍력단지 조성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난 6월에는 삼성전자 탕정공장 지붕에 1.2㎿ 규모의 태양광을 준공하기도 했다. 이는 정부가 권장하는 건축물 이용 태양광 설비 중 가장 큰 용량이다.
중부발전은 다양한 발전소에서 실험적인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운영하고 있다. 보령화력은 태양광·풍력과 함께 연료전지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관련 기술을 향상시키고 있다. 연료전지의 경우 다른 신재생에너지원에 비해 높은 효율성을 살리기 위해 전력연구원·두산중공업과 실증 연구개발을 추진, 핵심기술 및 가격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풍력자원이 풍부한 양양양수발전소 상부댐 유휴부지에는 1.5㎿ 풍력발전기 2기를 설치·운영하면서 국내 풍력발전의 효시가 됐다. 이밖에도 중부발전은 △여주엑스포 박람회장 내 태양광설비 구축 △현대제철 부생가스발전소 △경기도 방조제 태양광·풍력 등 발전소 이외의 다양한 설비 융합형 신재생에너지 모델을 계획·운영하고 있다.
동서발전은 모든 발전소에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설치해 그린사업장으로 완성했다. 이와 함께 모든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조명부하를 자체 신재생에너지원으로 확보한다는 개념의 ‘그린 에코 플랜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동서발전의 각 사업소 신재생에너지 생산 전력량은 6만2817㎿h로 각 사업소가 조명용으로 사용하는 전체 전력량인 1728.9㎿h를 훨씬 웃돌고 있다.
서부발전은 석탄가스화복합발전(IGCC)을 태안화력 7만6000㎡ 부지에 조성할 계획이다. IGCC는 석탄을 가스화해 가스터빈을 구동하고 배기가스 열로 증기터빈을 구동하는 미래 친환경 발전기술이다. 태안 IGCC는 300㎿ 규모로 다른 신재생에너지보다 설비용량이 크며 노후 화력발전 시설의 교체모델로 각광받고 있어 다른 화력발전소로 점차 적용 사례가 늘어날 전망이다.
남부발전은 최근 착공에 들어간 삼척그린파워에서 우드펠릿 등 원가경쟁력의 비교우위를 확보할 수 있는 신재생에너지원을 집중 개발할 계획이다. 또 현재 운영 및 건설 예정인 각 발전소 내 신재생에너지를 최대한 개발해 조명 전원으로 사용하고, 집단에너지 사업과 연계한 연료전지 사업 개발 등 친환경 발전소로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운영 노하우, 해외 진출에 밑거름=발전회사들은 발전소 내 부지를 활용한 신재생에너지 설비 구축에 더욱 속도를 가할 계획이다. 또 추가적인 신재생에너지 발전단지도 주요 화력발전소 인근에 구축해 화력발전소가 중심축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발전소에 연결돼 있는 전력계통망과 발전관련 유지관리 인력 등 기존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신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 구축비용을 줄인다는 전략이다.
남부발전은 그리드패리티에 근접한 풍력발전과 시설물 활용 경제성이 뛰어난 태양광을 양대축으로 신재생에너지 설비를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서부발전은 태안화력 내 태양광·소수력·IGCC를 시작으로 태안 일대에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발전소를 구축할 예정이다. 동서발전은 발전소 조명을 신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그린 에코 플랜트 프로젝트’ 2단계 사업을 실시한다. 이를 위해 현재 30㎿ 동해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비롯해 당진화력의 태양광·소수력 등 추가적인 신재생에너지 설치를 확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은 해외 신재생에너지 수출로 이어지고 있다. 중부발전은 양양 양수발전·풍력을 시작으로 경기도 방조제 풍력사업 등 최근 들어 풍력발전에 역량을 집중하면서 나미비아 해안도시인 루데리츠에 44㎿ 규모의 풍력발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남동발전도 영흥화력 내 국산풍력 2단계 사업을 완료, 9기의 풍력발전기를 설치하고 마케도니아·폴란드·루마니아 등지에서 500㎿ 규모의 풍력단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조정형기자 jeni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