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료기기 전문기업 바텍에 70~80여명의 주부가 한꺼번에 찾아왔다. 대다수가 육아와 가사를 맡고 있는 3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의 여성들이다. 의료기기와는 다소 관련 없어 보이는 이들이 바텍을 찾은 이유는 면접을 보기 위해서다.
바텍은 최근 육아 및 가사 일로 직장 출퇴근이 쉽지 않은 주부를 대상으로 채용 공고를 냈다. 이들의 업무는 해외 웹사이트와 시장조사기관 등을 조사해 의료기기 선진국 동향과 트렌드를 파악하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다. 아울러 경쟁업체 움직임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일도 포함됐다. 이러한 작업을 하는 데 필요한 영어·스페인어 등 외국어 능력은 기본 조건이었다. 이른바 ‘스펙’이 높은 주부를 뽑는 다소 이례적인 채용이었다.
쉽지 않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수 십명의 지원자가 몰린 이유는 바텍이 내건 재택근무라는 혜택(?) 때문이었다. 실제로 지원자들 대부분은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던 이들이었다.
바텍이 이들을 채용하게 된 데는 노창준 바텍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다. 노 회장은 사회적 기업으로서 일자리를 많이 창출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특히 우수한 능력을 지닌 여성들이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건 사회적 낭비라는 게 그의 신념이다. 비록 1년 계약직이라는 조건이 있지만 여성 재취업 기회나 정년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바텍의 이번 채용은 주목받기 충분했다.
채용에서는 최종 5명의 여성이 뽑혔다. 모집 당시만 해도 우선 3명만 뽑을 계획이었지만 우수한 인력이 많아 채용 인원을 2명 더 늘릴 수밖에 없었다고 바텍 측은 설명했다.
고현정 바텍 차장은 “경쟁률이 17대1에 달할 정도로 많은 분들이 지원해 내부적으로도 상당히 놀랐다”며 “올해 말에는 이들을 중심으로 독립적이고 안정된 조직을 만들어 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김민수기자 mimo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