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치타

 치타는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는 동물이다. 110㎞에 이르는 순간 시속으로 먹이를 사냥한다. 몸의 모든 부분을 달리기에 적합하게 진화시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쟁력을 갖췄다. 이쯤되면 먹이사슬 최상단에서 왕성한 번식력을 가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치타는 현재 1만2500마리 정도만 남았다. 보호가 필요한 야생동물인 것이다. 치타가 이런 상태에 내몰린 것은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타는 거의 유전적으로 같은 종만 남아있다.

 보통 야생동물들은 같은 종이라고 할지라도 유전자가 80%정도 일치하지만 치타는 99%가 같다고 한다.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큰 다양한 유전자보다는 한정된 지역에서 경쟁을 이겨낼 수 있는 특정 유전자로 채운 것이다.

 이처럼 유전자가 획일화되면 환경변화에 적응하기 힘들다. 다양하지 못한 유전자 구성으로 특정 바이러스에 높은 감염률을 보이거나 내성이 약해진다. 만약 한마리가 감염되면 근처에 살고 있는 다른 치타들도 덩달아 질병에 시달리다가 죽을 확률이 높다. 인간이 초원영역을 침범하는 환경변화가 일어나자 감염에 취약한 치타는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초원에서 달리기 선수로 살도록 지나치게 단순화한 게 오히려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기술 전문화는 유전자 획일화와 일맥 상통한다. 현대 사회는 점점 적은 수의 분야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알기를 요구하고 있다. 한 가지에 대해서는 모두 알지만 나머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기술 전문화는 각 기능의 작동범위를 너무 제한하기 때문에 어떤 기능을 다른 임무에 적응시켜 재배치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모든 구성요소가 특정 임무만 수행하도록 설계되어 다른 것은 하지 못한다. 임무의 내용이 바뀌면 그 요소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이렇게 되면 메커니즘의 일부만 고장이 나도 전체 시스템이 마비되는 지경에 처한다.

 최근 노키아 몰락을 보면서 치타가 떠올랐다.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등장이라는 환경변화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환경변화에 대비할 수 있는 융통성과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연생태계와 비즈니스 생태계는 다를 것이 없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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