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모르는 기술이라고 대출 안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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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 성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은행 대출을 거절당하는 기업이 상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여신담당자의 과도한 잣대 제시로 대출을 거부당한 기업도 많았다.

 이는 국내 한 시중은행이 분석한 기업 대출신청에 대한 ‘부결(거절) 여신’ 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자료에 따르면 기업 여신에 대한 부결 판정사유로 담보 부족 등으로 인한 ‘채권보전 미흡’이 131건(26.15%)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가운데, ‘사업전망 불투명’을 이유로 대출을 거부한 경우도 전체의 12.18%(61건)에 달했다. ‘채권보전 미흡’과 ‘신용여신 과다(16.37%)’ 다음으로 높은 비중이다. 담보에 문제가 없고 현재 이용하는 대출이 기준(한도)을 넘지 않았음에도, 기업이 보유한 기술 또는 속한 산업의 성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출이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은행이 빠르게 변하는 기술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고려할 때, 적지 않은 신기술 기업들이 은행 대출 문턱을 넘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자료에 따르면 은행 부결여신 가운데 재검토 결과, 대출을 안해준 것이 옳다는 ‘적정’ 판정은 전체의 절반도 안되는 41.92%(210건)에 불과했다. 다시 들여다보니 대출을 해주는 것이 나을 수 있었던 사례가 절반을 웃돈 셈이다. 부결 결정 후 ‘추후 승인’된 경우는 27.94%(140건)였으며 고객인 기업이 타 은행 등을 이용해 은행의 ‘영업기회 상실’로 결론난 경우가 14.57%(73건)였다. 나머지는 ‘손실예방’과 승인·부결 판정이 애매한 ‘그레이 존(Gray Zone)’이 각각 9.58%(48건)과 4.99%(25건) 순이었다. 자료는 이달 주요 시중은행 기업여신 담당자들이 모인 가운데 비공개로 열린 ‘중소기업 여신심사 심포지엄’에서 한 은행이 501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내용이다.

  이진호·김준배기자 jholee@etnews.co.kr

 

 <뉴스의 눈>

 ‘담보 제시에다 사업성까지 입증(?)’.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술벤처 CEO들 대부분은 은행이 산업과 기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대출권을 과도하게 휘두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IT 등 서비스업으로 출발했을 경우, 마땅히 담보는 없고 믿을 것이라고는 ‘나만의 기술’ 밖에 없는데 그것을 제대로 평가해 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소한섭 중소기업중앙회 정책총괄실장은 “국내 은행은 유독 담보를 많이 요구한다”면서 “기술을 담보로 제시해도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와 사업성이 있는지 제대로 판단을 못한다. 수억원을 들여 기술을 개발해도 제대로 인정을 안 한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결과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또 기업대출 부결사례를 다시 검토한 결과도 주목된다. 부결이 적절했던 것은 절반에도 못미치는 42%에 불과하고, ‘영업기회 상실(잠재고객의 타 은행 이용)’과 ‘추후 승인’ 비중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 명확한 기준도 없고, 이 때문에 충분히 시장 경쟁의 허들을 넘을 수 있는 기업들조차도 은행 문턱은 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모 시중은행 관계자는 “심사하는 사람의 개인적 성향에 따라 과도하게 보수적인 경우도 있다”면서 “영업기회 상실로 명시한 것은 대출을 해줘도 무리가 없는 데, 안 해준 경우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은행들이 보수적 관점에서 벗어나 보다 친기업적으로 돌아설 것을 주문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강조되는 기업가정신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에 매진하는 기업을 은행도 인정해줘야 한다”면서 “노력하는 기업이 힘을 낼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해야 금융(은행)과 기업이 윈윈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