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고사위기 지방 컴퓨터상가
현재 지방 컴퓨터 집단상가는 고사 위기다. 조립PC 시장이 쇠락하면서 매출과 수익은 10년 전과 비교해 70%나 줄었다. 한 때 전국적으로 100개 이상이 성업 중이던 집단상가 수는 30여개 정도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부산서 조립PC 장사를 10년째 해온 K사장은 “PC를 전자상가에서 사던 시대는 끝났다”며 “여러 대안을 모색하지만 답이 잘 안보인다”고 말했다.
대형마트와 전자전문점, 인터넷 쇼핑몰의 세 확장에 밀려 존폐의 기로에 서 있는 지방 컴퓨터 집단상가. 하지만 여전히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들 상가와 점주들의 힘겨운 활동을 들여다봤다.
지난 23일 부산 동래구에 있는 ‘부산컴퓨터도매상가’. 퇴근 시간대인 오후 6시 무렵이지만 물건을 사러 온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 3개층에 150개 매장이 들어선 부산 최대 컴퓨터상가라는 말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하루 열명의 손님을 넘기기가 어렵다. 점원 한명 고용하기도 어려워 상당수 점포는 부부가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상가 2층에서 스카이컴퓨터 매장을 운영 중인 이남은 사장의 얘기다. 150개 점포의 월 평균 수익은 200만~300만원 정도. 점주의 70% 가량이 40대 중반 이상이다.
이 상가는 부산 전체 컴퓨터유통상가 중 그나마 나은 편이다. 1990년대까지 20개가 넘던 부산의 컴퓨터·가전 전문 집단상가는 현재 가야, 중앙동 등에 5개 정도만 남아있다. 그것도 점포수가 많아야 60개, 적으면 20~30개로 집단상가라 불리기조차 민망하다.
컴퓨터상가의 어려움은 타 지역이라고 해서 별반 다르지 않다.
광주의 ‘반도전자도매상가’는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역 최고의 컴퓨터 및 주변기가 전문상가였다. 하지만 현재 매장 수는 100여개로 10년 전 대비 절반 넘게 줄었다. 12년째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업체 사장은 “조립컴퓨터 시장 성장기에는 대당 10만원 이상의 마진이 남았지만 지금은 부품 위주고, 그것도 개당 1만~2만원을 남기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대전의 대표적 컴퓨터상가인 ‘테크노월드’의 공실률은 현재 20%에 육박한다. 지난해 빈 매장이 70~80개 수준이던 것에서 올 들어 10여개 더 늘었다. 사정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전국 컴상가 삼중고=국내 컴퓨터 및 주변기기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한 때 100개가 넘었던 컴퓨터 집단상가 수는 1990년대 후반을 정점으로 줄어들어 지금은 서울 용산전자상가 등 30여개 정도만이 남아 생존을 위한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 상가의 쇠락은 조립PC 시장의 몰락이 가장 큰 이유지만 동시에 대형마트나 전자전문유통점, 인터넷 쇼핑몰 등 신규 유통점의 확산에 따른 고객 이탈도 주요 원인이다.
이에따라 한 때는 청장년층 사이에 최고의 창업 아이템이었지만 지금은 20~30대 점주를 찾기가 쉽지 않다. 집단상가의 컴퓨터 유통은 점주 노령화에 매출 및 수익성과 비전까지 노화한 노령업종으로 치부되고 있다.
◇생존 모색은 현재 진행형=그렇다면 컴퓨터 집단상가의 미래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전자유통 전문가들은 집단상가가 지닌 최대 장점인 ‘매장 집적화의 강화’와 함께 ‘대고객 서비스 차별화’, ‘틈새시장 개척’ 등을 상가 생존 및 활성화의 대안으로 꼽는다.
대구 북구 검단동 유통단지 내 ‘전자관’은 전반적인 지방 컴퓨터상가의 고전에도 불구하고 신규 집적화를 통해 선방하고 있는 사례다.
지난 2000년 대구 중구에 있던 낙후된 상가를 집단 이주시켜 조성한 이곳은 총면적 7만m²에 전체 5층 중에서 3개 층이 컴퓨터 상가다. 이후 철저한 영업시간 준수와 전략적 제품 디스플레이, 각종 이벤트에 다양한 휴식공간을 제공하며 끊임없이 고객 유입에 노력한 결과, 초기 200개 정도의 매장 수는 지난 2007년 350개까지 늘었고, 단일 건물로는 지방 최대 컴퓨터 매장수를 자랑하고 있다.
광주 반도전자상가는 최근 상인회와 지자체간 힘을 합해 대대적인 시설 현대화에 착수했다. 결국 대고객서비스 개선만이 살길이라는 판단에서다. 총 25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주차장 확대에 이어 전선지중화, 아케이드, LED조명시설 등을 마련하고 있다.
부산컴퓨터도매상가는 지역 중소기업을 고정 고객으로 확보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중소제조업의 경우 컴퓨터 유지보수에 따른 비용 절감에 민감하기 때문에 집단 컴퓨터상가가 잡을 수 있는 마지막 틈새시장이기 때문이다.
부산컴퓨터도매상가 관리회사인 슈퍼산업개발의 박철우 대표는 “시설 현대화, 서비스 개선 등과 함께 젊은층 고객에게 호소할 수 있는 첨단 제품과 주변기기, 찾기 어려운 틈새 상품 발굴에 점주들이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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