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넘쳐나는 전기공사 업계]<중>끊이지 않는 악순환

 수주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사람이 여러 기업을 소유하거나 입찰 요건을 채우기 위한 판매용 기업이 늘면서 정상적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기업은 위협을 받고 있다. 남의 실적을 더해 입찰에 참여하다보니 업계에서는 단가계약을 ‘운찰(운+입찰)’ 또는 ‘로또’라고 부를 정도다.

 15년 업력의 한 업체 대표는 “정상적인 실적과 능력으로 ‘운찰’을 수주하는 것보다는 허위 실적과 여러 개 기업을 가진 업체가 수주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며 “이를 경험한 업체 대표들은 경쟁업체 실적과 기업을 늘려 가는데 더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들어 전기공사업 인수합병제도를 악용한 컨설팅 업체도 한몫하고 있다.

 컨설팅 업체는 전기공사 및 건설업체의 특정 전기공사 실적을 다른 기업과 거래하면서 불법을 조장하고 있다. 실제 컨설팅 업체는 A업체의 해당 실적을 가진 사업부를 분리해 B라는 신설법인을 만들어 B업체의 공사 실적을 필요로 하는 C업체와 인수합병을 추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상적인 전기공사 실적뿐 아니라 토목공사·인테리어공사·건설공사 등의 실적을 전기공사로 위장해 전기공사협회에 신고하는 경우도 많다. 협회에 신고하면 그대로 전기공사 실적에 등재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거래를 성사시킨 컨설팅 업체는 A업체 대표에게 계산서도 발행하지 않고 인수합병 거래금의 5%를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진 지 오래다.

 최근 1년간 합병으로 인해 폐업했다고 신고한 업체 수가 전국에 570건으로 이중 약 70%가 한국전력의 지난해 입찰 시즌(10월)을 앞두고 신고한 업체들이다. 폐업 신고업체의 대부분은 불법적인 합병을 통해 나왔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최근에는 한국전력 입찰에서 떨어진 업체가 선정된 업체의 실적이 허위임을 입증해 경찰에 신고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이에 전기공사협회 한 관계자는 “페이퍼 컴퍼니가 있는 건 사실”이라며 “이는 불법이라기보다는 제도적으로 막을 길이 없는 상황이며 오랜 시간 업계에 뿌리 내린 하도급 문제 등 전기업계 총체적인 현안과도 맞물려 있다”고 말했다.

 한번 입찰에 떨어지면 다시 입찰에 참여하기까지 보통 2년을 기다려야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컨설팅 업체의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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