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 이후 일본 산업계가 취한 발빠른 행보 가운데 주목되는 것은 생산거점 및 주요 기반의 다변화다. 특히 ‘일본에서만 생산하는 품목’이라는 자부심을 함께했던 고부가가치 부품소재까지도 생산거점을 해외에서 찾는 분위기다. 대지진으로 인한 공급망 붕괴가 기술 유출의 위험보다 더 뼈아픈 경험을 줬기 때문이다.
반도체 소재인 블랭크마스크 전문업체인 호야는 대지진 직후 블랭크마스크 전량을 일본 국내(야마나시현 나가사카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원칙을 파기했다.
이 회사는 조만간 신규 부지를 선정하고 내년 말부터 새 공장에서도 블랭크마스크를 생산한다는 방침이다. 호야는 또 블랭크마스크 이외에 세계 시장 30% 정도를 차지하는 카메라용 비구면 렌즈의 해외 생산도 검토 중이다.
반도체업체인 르네사스는 미국과 대만 파운드리 활용을 늘릴 예정이다. 또 공장마다 회로설계 방법이 달랐던 것을 통합한 후 7월부터는 한 공장에서 여러 가지 MCU를 생산, 지진처럼 재해가 일어나도 제품 공급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만들 방침이다.
리코는 컬러 복합기용 신형 토너의 미국 조지아주 공장 생산을 검토 중이다. 신형 토너는 일본 업체들이 80%의 세계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다.
또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내 특정 업체들에 집중돼 있던 부품소재 공급처를 대폭 분산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 회사는 이번 지진으로 인한 일부 부품 공급 단절로 연말에나 정상적인 생산이 가능할 만큼 큰 피해를 입었다.
또 일본 국내에서는 완성차 생산공장 인근 업체와 거래를 확대, 국내 생산거점인 도카이(東海), 규슈(九州), 도호쿠(東北) 등 3개 지역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나머지 지역에서는 정상조업을 이어갈 수 있는 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일본 IT업계는 인터넷데이터센터(IDC)의 해외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가장 신속한 결정을 내린 업체는 소프트뱅크로 KT와 협력해 한국에 데이터센터를 두기로 결정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지진과 재난이 잦은 일본에 핵심 IT자산을 두는 건 적절치 않다”며 “일본에서 불과 두 시간 거리인 한국에 있는 데이터센터를 활용하는 게 좋은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그 이유로 세계 최고 수준의 한국 초고속인터넷 인프라 환경, 앞선 클라우딩 서비스 기술, 일본의 절반에 불과한 사용료와 전기료 등을 꼽았다. 소프트뱅크를 시작으로 일본의 다른 IT기업들도 한국 IDC를 노크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500억엔을 투자해 홋카이도나 동북구 지역에 데이터센터를 유치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지난 3월 발생한 대지진으로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게다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전력 부족으로 오는 7월 전력 사용량을 15% 감축해야 한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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