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100일]부품 · 소재 공급차질 찻잔속 태풍에 그쳐

 일본 대지진 탓에 부품소재를 현지 업체에 의존하는 기업들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우려는 다행히 ‘기우’로 끝났다. 카메라 등 일부 수입 완제품을 제외하면 국내에 생산설비를 가진 기업 대부분은 내재화·공급처 다변화를 통해 일본발 여진을 피해갔다.

 ◇반도체·2차전지 ‘이상 무’=반도체 업계서는 구매처 다변화 전략이 주효했다. 세계 최대 반도체 웨이퍼업체인 신에쓰 후쿠시마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삼성전자·하이닉스는 국내 웨이퍼기업인 LG실트론의 구매 물량을 늘렸다. 보통 2개 웨이퍼업체와 거래했던 일본·대만 반도체업체들과 달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3개 업체와 거래해왔다.

 대지진이 발생하자마자 대체 물량을 확보했다. 하이닉스는 일본 대지진 이후 LG실트론 구매 비중을 이전에 비해 10%포인트 높였으며, 삼성전자 역시 5%포인트가량 높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신에쓰가 싱가포르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한국에 최우선적으로 공급하기로 하면서 웨이퍼 수급 불균형 해소는 급물살을 탔다. 그동안 삼성전자·하이닉스의 구매력이 그만큼 성장한 셈이다.

 과거 대일본 의존도가 높았던 2차전지용 핵심 소재도 내재화·국산화를 높임으로써 위기를 비켜갈 수 있었다. 현재 2차전지 분야에서는 SK이노베이션이 분리막 세계 1위 기업인 일본 도넨의 아성을 뚫고 생산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

 일본 의존 소재는 아니지만 양극활물질도 과거 벨기에 유미코아 독무대에 토종기업인 에코프로가 진입, 국산화 비율을 높이고 있다. 양극기재는 삼아알미늄과 롯데알미늄이 사실상 시장을 양분하고 있으며, 음극기재는 일진머티리얼즈가 세계 시장 1위를 달성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양극·음극활물질 모두 내재화·국산화를 추진하면서 일본 지진으로 인한 여파는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DSLR 카메라 가격은 아직 고공행진=부품·소재와 달리 완제품 부문에서는 일본 지진으로 인한 여파가 일부 발생했다. 특히 수급 불균형이 가장 극심하게 초래됐던 제품이 카메라다. 캐논·니콘 등 일본 굴지의 카메라업체들이 생산·물류 차질을 빚으면서 인기 제품을 중심으로 국내 판매 가격이 10% 이상 급등하기도 했다.

 가격비교사이트 다나와에 따르면 캐논 ‘EOS 5D 마크2’의 경우 지진 전인 1~3월 304만~306만원(렌즈 미포함) 정도에 거래됐으나 지진 직후 332만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EOS 5D 마크2는 최근 전문가급 동영상 화질을 구현하면서 국내 마니아로부터 인기가 높았던 제품이다. 특히 캐논 ‘EOS 600D’는 지진 여파 탓에 국내 홈쇼핑 판매를 중단했다가 지난 14일부터 GS홈쇼핑에서 판매를 재개했다.

 니콘 ‘D700’도 236만원 정도에 판매되던 것이 지진 발생 이후인 4월 251만원까지 가격이 뛰었다. 소니 제품은 4월까지는 가격이 안정적이었으나 지난달 들어 8% 이상 높아졌다.

 문제는 이처럼 높아진 카메라 가격이 지진 발생 100일이 지난 이달까지도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논·니콘의 한국지사가 이미 일본 현지 물류 상황은 정상화됐다고 밝히는 것과는 상반된 현상이다. 다나와 측은 “일부 IT 제품의 가격은 유가와 마찬가지로 오를 때는 빠르게 오르고 내릴 때는 천천히 내리는 경향이 있다”며 “이달 들어 약간의 하락세로 돌아선 만큼 향후 가격 추이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