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임원이 없다. 한국인 창업자가 적다. 실리콘밸리 유학생 수가 줄어들고 있다. 얼마 전부터 실리콘밸리 한인들 사이에서 공유하고 있는 고민거리가 돼버린 내용들이다.
IT 강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가 IT 최첨단 글로벌 산업단지인 실리콘밸리에서는 인도·중국인에게 밀려도 한참 밀린다. 두 나라는 각기 1500명, 3000명씩 모임을 만들어서 세를 과시하기도 한다.
첨단 기술을 익힌 인력이 국내 기업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도 문제다. 중국·인도계 전문가들이 자국 기업으로 돌아가 첨단 기술을 이식하는 것과는 대비된다.
새너제이 북 1번도로(N 1st St.)를 따라서 차를 몰면 LG전자·하이닉스·LG이노텍·삼성전자 간판을 차례로 볼 수 있다. 세계 최대 반도체 구매 고객인 애플·hp 등에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전진기지다.
100명이 넘는 직원 중 한국에서 간 주재원은 약 4분의 1. 대부분은 유학 후 정착한 인력이나 한인 2세로 채워진다. 이 기업들은 비정기적으로 ‘지상사모임’을 열어 한인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사업을 하고 디자인센터를 만들어 한인 일자리를 늘리는 역할도 한다.
하지만 이 곳 분위기가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한 한국인은 “요즘 한국 기업과 정부는 이곳 한인 전문가를 싸게 쓸 수 있는 인력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능력이 있으면 미국 기업에 가지 굳이 삼성·LG에 가려고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내 기업이 그리 매력적인 직장이 못 된다는 이야기다.
미국 기업의 고위 임원으로 발탁되는 경우도 드물다. 중국계·인도계 모임에서는 상당수가 글로벌 기업의 고위급에 포진하고 있다. 금융 위기가 일어났을 때도 감원 여파를 한국인이 더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해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한국인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다 이방인과 교류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점을 이유로 꼽았다.
문제점을 해결해보고자 한인들도 뭉쳤다. 첨단기술 전문가 모임 ‘베이에어리어 K그룹’이 생겼다. 이 지역 내 IT기업에 재직하는 한국인이 모여서 만든 인터넷 커뮤니티가 출발점이다.
4년 만에 회원 규모는 1250명까지 늘었다. 한 달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모여 신기술·시장동향 정보를 공유한다. 실리콘밸리에 온 초기 정착자에게 도움도 준다. 이 모임이 활성화되면서 한인 사회에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돌고 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벤처캐피탈(VC) 회사도 여럿 생겨 창업을 돕고 있다. 부가벤처스, DFJ, 월든인터내셔널 등은 특히 한국계 투자가 많은 VC다. 딜플러스·TV서치·인테늄 같은 한국계 신생 벤처도 나타나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인이 자리를 잡고 결국 조국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정부를 비롯한 국내의 조력도 필요하다. 송영길 K그룹 대표는 “순수한 정보 교류 목적으로 만든 우리 모임이 알려지고 난 뒤 한국 정부나 정치권 등에서 실리콘밸리 연수·여행 도움 요청이 하루에도 몇 차례씩 온다”며 “운영진이 대부분 직장인인데 일일이 대응하기 어렵고 여기 한인들이 매번 자기 회사 견학을 시켜줄 수는 없다”며 어렵사리 꾸린 모임이 존속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새너제이(미국)=
오은지기자 onz@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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