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상상하기도 싫은 신용카드대란의 악몽이 재연되는 것 아닐까. 연체율, 자기자본비율 등 지표로 봤을 때 2003년에 발생했던 카드대란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카드론 급증과 카드시장 과열경쟁 양상은 카드대란 우려를 현실화시킬 우려가 있다. 저축은행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로 타격을 입으면서 신용등급 5~9등급의 저축은행 고객이 카드론 시장으로 몰려 카드대란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는 것이 금융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따라 금융감독원은 카드사 감독 업무를 담당하는 여신전문서비스실을 여신전문감독국으로 확대 개편하고 카드검사 전담팀도 신설하기로 했다. 한국은행도 카드업계 동향을 면밀히 주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소득층 카드론 의존도 높아=각종 수치상으로 2003년 카드대란에 비해 훨씬 안정적이라는 게 카드업계와 감독당국의 설명이다.
2003년 말과 지난해 말을 비교하면 카드 자산은 77조3000억원에서 75조6000억원으로 소폭 감소했고, 카드사 자기자본비율도 -3.3%에서 28.5%로 크게 개선됐다.
연체율 역시 2003년 28.3%까지 치솟았지만 지난해 1.7%에 불과한 데다 카드사들의 당기순이익 역시 7조7000억원 순손실에서 2조7000억원 순이익으로 전환됐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저신용층인 8~10등급에 발급된 카드가 13만8817장으로 전년보다 17.6% 늘었다. 하지만 8~10등급의 보유 카드 수는 2009년 말 159만4210장에서 지난해 말 152만1730만장으로 4.5%가량 감소했다.
문제는 카드론이다. 카드대란의 근본 원인은 현금서비스에 있었다. 지금 현금서비스는 당시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지만, 비슷한 성격의 카드론은 지난해 23조9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33.3%나 늘었다.
산은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소득수준 하위 20% 가구는 평균 담보대출 538만원, 신용대출 349만원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이들이 보유하고 있는 카드론은 가구당 1706만원으로 일반 대출에 비해 의존도가 훨씬 높다.
특히 이들 가구주의 월세거주 비중은 61%, 무직자 비중은 39%에 달해 위험이 상존하며, 대환대출(기존 연체를 다른 대출로 상환)한 금액도 가구당 717만원에 달한다.
산은경제연구소 관계자는 "카드론 대출자들이 원리금을 상환하기 위해 안고 있는 금융부담은 명목소득 대비 10%에 달한다"며 "가처분 소득 대비 부채비율도 2.4배에 달해 가계부실과 신용카드사의 자산건전성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카드론 위험 더 커져=서민금융의 한 축을 담당해온 저축은행이 부동산PF 부실 때문에 저신용자 대출을 꺼리면서 카드론을 확대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최근 금융회사와 대부업체 금리 상한선이 44%에서 39%로 낮아지면서 저신용자들은 상대적으로 대출이 손쉬운 카드론으로 몰릴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금리가 내리면서 금융사들이 저신용자 대출을 꺼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카드사 입장에서 이런 저신용자 고객들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나중에 큰 위험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음 CEO 책임이고, 지금 카드론은 단비와 같은 수익원이다. 그동안 수익의 60%를 차지하던 가맹점 수수료 수익이 정부의 가맹점 수수료 인하정책 등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이고 치열한 경쟁으로 마케팅 비용도 치솟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건 카드론밖에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지주사들이 일제히 카드사업에 눈을 돌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KB국민카드가 전업 카드사로 출범한 데 이어 농협과 우리은행도 카드사를 분사할 계획이다. 또 외환과 씨티, SC제일은행의 분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금융지주사들이 카드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기고 있지만 카드론 급증 등 위험성을 감안하면 국가경제에는 `독이 든 사과`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카드소비자들의 주머니 사정과 관계없이 먼저 포인트를 지급한 후 카드사용을 장려하는 카드사들의 경쟁은 카드소비자들의 신용도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용어설명
카드론 = 신용카드사가 카드회원을 대상으로 신용도ㆍ카드이용실적에 따라 대출을 해주는 상품으로 현금서비스와 함께 카드사의 대표적인 대출상품으로 꼽힌다. 현금서비스는 다음 결제일에 전액을 상환해야 하지만 카드론은 대체로 2~36개월에 걸쳐 나눠서 상환할 수 있다. 카드론 금리는 현금서비스와 비슷한 수준으로 카드사, 신용도에 따라 연 7~28% 정도로 책정된다. 대출자가 한번 이자를 갚지 못하면 계속 금리가 올라가면서 결국 파산하게 된다.
[매일경제 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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