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클로즈업]일본 반도체 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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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반도체 패전

 유노가미 다카시 지음. 윤상균 감역. 임재덕 옮김. 성안당 펴냄.

 

 고대 로마제국이 그랬고, 노키아가 그랬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한 사람과 조직, 기업, 나아가 국가의 흥망성쇠는 일순간이었다. 한때 철옹성과 같은 지위를 누렸던 그들을 기억하면 ‘반면교사’라는 말조차 어쩌면 격에 맞지 않는다. 관조하는 여유를 부릴 수 있는, 배우는 자 입장에서 나올 법한 경구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나락으로 떨어질 때는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하지만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사람이나 기업이나 일국의 산업은 부침을 거듭하게 마련이다. 지난 2001년 포천 선정 글로벌 상위 100대 기업 중 10년이 흐른 지난해 순위에 남아 있는 곳은 겨우 절반인 52개에 불과하다.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주요 산업 부문에서 10년 이상 변하지 않던 1등 기업도 대거 바뀌었다. P&G가 유니레버를 제치고 일반 소비재 시장 선두로 올라선 것이나 다우코닝이 화학 시장에서 듀폰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이 단적인 예다.

 시장의 선도자들은 왜 스러져 갈까. 숱한 시행착오를 앞서 겪을 수밖에 없고, 투입해야 하는 자원도 추격자들에 비해 더 많이 부담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조직 문화의 관성화다. 1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강박 탓에 기존의 타성을 깨기 어렵다는 점이다.

 일본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는 오랜 관성으로 굳어진 집단적 오류가 일국의 산업 전체를 일순간 패배자로 추락시킨 역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 1980년대 중반께만 해도 일본은 미국과 더불어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의 선구자였다. 지금은 반도체 공룡 인텔을 바짝 추격하고 있는 삼성전자도 고 이병철 회장이 일본에서 반도체 사업을 배운 것이 그 출발이었다.

 저자는 일본 반도체 산업에 심각한 ‘병’이 있다고 진단한다. 기술 맹신주의에서 비롯된 과잉 품질, 과잉 성능의 제품만 만드는 병이란다. 비단 반도체만이 아니다. 한때 휴대폰 시장에서 리더십을 자랑했던 일본 업계는 기술 우위만 믿고 세계 표준과는 동떨어진 고집을 부린 탓에 결국 고립을 자초했다. 이른바 갈라파고스 신드롬이다.

 저자는 지난 1987년 히타치에 입사해 2002년 퇴사할 때까지 일본 반도체 산업의 쇠락기를 몸소 체험했다. 그 뒤 도시샤 대학에서 사회과학적 연구를 통해 일본 반도체 산업의 실체를 분석해봤다. 일본 반도체 산업이 쇠퇴한 원인에 대해 그가 내린 결론은 수익성 악화다. 그 이유를 파고 들어가면 역시 과잉 기술과 과잉 품질의 제품을 고수하는 고질병이 있었다.

 옮긴 이가 저자와 직접 인터뷰한 내용도 담았다. “한국 반도체 업계의 병이나 약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답이 이렇다. 우선 칭찬이라면 한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유효적절한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점이다. 신속한 결단력과 저돌적인 실행력이 그 바탕이다. 다만 여러 가지 이해관계와 장기 비전을 고민해야 하는 비즈니스에는 약점이 있단다. 비메모리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의 성공 경험에만 젖어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된다’는 타성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제든 ‘한국 반도체 패전’이라는 책도 나올 수 있다는 따끔한 질책이다.

 1만2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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