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기업은 왜 망할까

 다소 도발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기업은 왜 망할까.”

 기업도 엄연히 하나의 생명체인 만큼 인간과 마찬가지로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제아무리 ‘좋은 기업’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조직으로서의 활력을 잃고, 사멸의 길로 접어들기 마련이다.

 위기에 봉착한 많은 기업들이 시대적인 흐름에 맞게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혁신’과 ‘변화’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직원들을 독려하고 신규 사업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다. 하지만 투자 시점을 놓쳐버리기 십상이고, 생때같은 인재들이 둥지를 떠난다. 결국 한때의 영화를 뒤로한 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좋은 기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운명을 맞는다. 그 곳에 몸을 의탁했던 직원들은 새로운 삶을 찾아 또 다른 행군을 시작한다. 진부한 스토리다.

 물론 100년 훨씬 넘게 고객들과 소비자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장하고 변신을 꾀하는 ‘위대한 기업’들도 꽤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 역사가 일천한 우리나라에선 아주 드물다. 가끔 외신을 타고 포천 100대 기업, 500대 기업 등 내로라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소개되지만 10~20년 정도 세월이 지나다 보면 사람들의 뇌리 속에서 사라지는 기업들이 부지기수다.

 요즘 문득 섬광처럼 스쳐간 생각 중 하나가 바로 ‘왜 기업은 망할까’라는 명제다. 오랫동안 취재 일선에서 수많은 기업의 명멸을 보아왔던 터이기에 더 없이 요즘 이 화두에 천착하고 있다. 첨단 IT산업의 선봉장임을 자처했던 많은 기업들이 기자의 취재수첩에서 하루 아침에 빠지고 다른 업체들이 이 자리를 채운다. 거칠 것이 없던, 잘 나가던 그 업체들은 왜 갑자기 취재수첩에서 사라졌을까.

 ‘서울디지털산업단지(G밸리)’는 1만2000개 입주 기업들이 새로운 아이디어와 첨단 제품을 앞세워 사투를 벌이는 현장이다. 이 곳에 입주한 기업 중 상당수가 종업원 10인 미만, 창업 5년 미만이다. 아이디어와 상품은 훌륭하지만 스타트업과 벤처기업이 반드시 거쳐가야 할 ‘죽음의 계곡’을 뛰어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생동감이 넘친다.

 물론 G밸리에 이런 기업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죽음의 계곡’을 통과해 성공의 단맛을 본 업체들도 적지 않다. 당분간 거칠 것 없어 보인다. CEO들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치고 굳이 표현하지 않지만 자신감이 묻어난다. 직원들도 일할 맛 난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그야말로 행복한 직장이다.

 하지만 정작 기자가 요즘 주목하는 업체는 지명도 높고 외견상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는 중소, 또는 중견 IT업체들이다. 이미 성공의 과실은 어느 정도 따먹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 아이템이 과거보다는 덜 하지만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전성기보다는 성장세가 주춤하지만 그런 위기는 어느 업체에나 있는 법이다. 하지만 이들 업체를 보면 과거 기자의 취재수첩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어느 날 사라져버린 업체들이 묘하게 ‘오버랩’된다.

 솔직히 걱정된다. 이들 업체가 국내 IT산업을 견인해왔고, 나쁘게 풀렸을 경우 파급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이들 업체가 위기를 잘 넘겨야 IT산업에 희망이 있고, IT생태계가 전반적으로 건강함을 유지할 수 있다.

 결국 CEO의 몫이다. 원점에서 다시 챙겼으면 한다. 혹시 기본에서 너무 멀어진 부분은 없는 지 살폈으면 좋겠다. 매사에 그렇듯이 아주 작은 곳에 구멍이 있을 수 있다.

 장길수 G밸리팀장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