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용기자의 책 다시 보기]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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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장정일의 독서일기, 여덟 번째

 다음 글을 읽고 1~5번까지 답하시오.

 1897년의 한가위.

 까치들이 울타리 안 감나무에 와서 아침 인사를 하기도 전에, 무색 옷에 댕기꼬리를 ( ) 아이들은 송편을 입에 물고 마을길을 쏘다니며 기뻐서 날뛴다. 어른들은 해가 중천에서 좀 기울어질 무렵이래야, 차례를 치러야 했고 성묘를 해야 했고 이웃끼리 음식을 나누다 보면 한나절은 넘는다. 이때부터 타작마당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고 들뜨기 시작하고―남정네 노인들보다 아낙들의 채비는 아무래도 더디어지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식구들 시중에 음식 간수를 끝내어도 제 자신의 치장이 남아 있었으니까. 이 바람에 고개가 무거운 벼이삭이 황금빛 물결을 이루는 들판에서는, 마음 놓은 새떼들이 모여들어 풍성한 향연을 벌인다.

 

 다섯 문제를 모두 기억하지 못한다. 가슴속과 뇌리에 각인된 세 문제 때문이다. 이 작품의 제목과 작가 이름을 각각 한자로 쓰는 것, 괄호 안에 들어갈 단어가 무엇이냐는 것. 이것은 나에게 온 ‘전자신문’의 강렬한 첫인상! 입사 시험 첫 꾸러미 문제에 모두 답한 나는 2011년 4월 1일 오늘, 기자로서 만 16년에 하루를 더했다. 제목과 작가는 늘 가슴속에 살았고, 괄호 넣기는 뇌리에 새겨 넣었다.

 책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갑자기 나타나 나의 삶을 즐겁게 하고는 했는데, 그 책의 그 등장(전자신문 입사 시험)은 유달리 특별했다. 삶의 심지(心志)를 돋우는 바탕이었고, 책을 더욱 사랑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이 처음이다. 아예 독후감을 모아 놓은 책이 처음이었다. 나는 읽고 싶거나 읽어야 할 책의 마지막 쪽 마침표까지 삼키는 유형이어서 이런 종류의 도서를 펼친 적이 없다. 그런데 ‘여덟 번째’라는 말에 붙들려 그 양(量)에 놀랐고, 책꽂이에 꽂아 두었으되 아직 읽지 못한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 같은 책이 궁금한 까닭에, 마지막 쪽 물음표까지 삼켰다.

 ‘아, 좋은 나침반이로구나!’ 하는 깨달음.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속 귀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고, 김용철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잊고 있었구나 하는 독서 계획까지. 지은이와 나의 책 읽기가 많이 겹치지 않았으나 얼마간 비슷한 생각을 발견한 것 같은 기쁨까지. 그래서 그의 ‘독서일기’로부터 더 많은 책을 꺼내볼까 하는 마음까지다.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안에, 내용이 궁금한 책이 들었으되 돈까지 주고 사야할까를 고민하는 게 한 권 있다. 지은이는 그 책을 썼다는(?) 저자가 그 책을 “가장 열심히 읽어야 할 사람(123쪽)”이라고 지적했다. “줄 쳐 가며 읽어야” 한다고 덧붙였을 정도다. 책을 사서 밑줄 쳐 가며 읽은 뒤 버리는 게 어떨까 싶은데…, 진짜 버릴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이러다 이런저런 쓰레기 같은 책들에 매이는 것 아닐까.

 “신산하다”고 말하기 부끄러우나 늘 책에 기댈 수 있어 행복했다. 늘 책에 기댈 수 있을 것 같아 기껍다.

 장정일 지음. 마티 펴냄.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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