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복원하면 탈세증거 다나와요"

지난달 중순 관세청은 1000억원대 환치기 계좌 운영주와 모집책을 잡아 꼼짝하지 못할 증거물과 함께 검찰에 송치했다.

이 운영주는 수년간 중국에서 밀수입을 하면서 수입대금을 은밀히 환치기 수법으로 해외에 빼돌렸지만 증거물이 없어 속수무책이었다. 임의로 제출받은 그의 휴대폰을 조사해 봐도 의심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텅 빈` 휴대폰을 포렌식(forensic) 기법을 적용하자 이미 삭제된 모집책과 주고받은 각종 문자메시지와 연락처가 쫙 드러났다.

기업이나 개인의 탈세, 횡령, 밀수, 담합사건 조사에 디지털 수사 방식인 포렌식이 빠르게 적용되고 있다. 디지털 포렌식은 지금까지는 혈흔, 유전자 감식 등 검찰과 경찰 등 주로 수사기관에서 활용해온 방식이다. 하지만 기업의 회계, 경영, 세무자료 등이 디지털화하면서 관세청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에서 기업 조사에 이를 적용하고 있다.

관세청 고위 관계자는 17일 "앞으로 각종 민형사 소송뿐만 아니라 세무조사, 담합조사, 밀수조사 등에서 삭제한 전자 데이터를 복구하고 분석해 증거를 찾아내는 디지털 포렌식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관마다 포렌식 수사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검찰과 경찰에만 의존할 수 없다"며 "검찰과 경찰은 범인을 잡는 데 목적이 있다면 국세청은 탈세, 공정위는 담합, 관세청은 밀수 등을 적발하는 데 디지털 포렌식 기법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관세청은 지난달 기존 포렌식센터를 `첨단과학수사센터`로 대폭 강화했다. 밀수와 재산 해외도피, 불법 외환반출 등이 점점 지능화하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히 포렌식 장비를 갖춘 특수차량 3대를 8억원에 리스해 서울과 부산, 인천 세관에 배치했다. 4인1조로 운영하는 포렌식 특수차량 도입으로 현장에서 압수한 물품에 대한 간단한 포렌식 이동수사도 가능해졌다.

관세청 관계자는 "세관별로 최첨단 디지털 포렌식 장비의 도입을 완료한 상태"라며 "팀장과 조사관, 전산직, 통신직 등 조사 분야 전문직원들로 운영한다"고 말했다.

국세청도 지난달 새로 출범한 첨단탈세방지센터의 60% 역량을 과학적 과세 증거자료를 확보하기 위한 포렌식 수사에 배분했다. 전자상거래 등을 통한 탈세 적발에서부터 각종 계약서나 증거자료의 진본 여부 감정 등에 이를 적용할 계획이다.

권도근 센터장은 "세무조사 때 기업의 전산자료나 계약서, 회의록, 증빙서류 등 문서 위ㆍ변조에 포렌식 조사를 실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국세청은 이미 첨단탈세방지센터 30여 명의 전산 전문요원들에게 위ㆍ변조 판독과 감정에 대한 포렌식 수사 교육을 했으며 문서 감정을 위한 관련 장비도 도입했다.

공정위도 작년에 기업 담합조사를 강화하면서 디지털포렌식센터 태스크포스를 창설했다. 점점 지능화하는 카르텔 사건 조사뿐만 아니라 하도급 불공정행위 조사, 시장감시국 활동 등 현장조사에도 투입돼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지워진 파일을 복구해 디지털 증거를 수집한다.

공정위 관계자는 "기업들이 점차 카르텔 조사에 대한 담합 증거를 지능적으로 없애버리기 위해 각종 컴퓨터 보관자료를 새로 포맷하거나 인트라넷을 차단하는 등 불리한 자료를 숨기고 있어 디지털 조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s):컴퓨터 법의학으로 불린다. 정보기기 내 내장되거나 복원한 디지털 자료를 근거로 증거물을 확보하고 분석하는 기술 등 디지털 수사를 뜻한다.

[전병득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