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차 합숙심사
1차 자격심사가 끝나자 정보통신부는 2차 사업계획서 심사에 착수했다.
1996년 5월 23일.
온천지역으로 유명한 충남 아산 한국통신 도고수련원(현 KT 도고수련관).
하얀 미소를 담뿍 머금은 아카시아꽃의 달콤한 향기가 수련원 주변을 휘젓고 다녔다.
이른 아침, 상큼한 공기를 가르며 검은 승용차 한 대가 도고수련원 현관으로 들어왔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은 이석채 정보통신부 장관(현 KT 회장)이었다.
이 장관은 도고수련원에서 합숙을 하며 신규통신사업자 향방을 가릴 사업계획서를 심사할 심사위원들과 조찬을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정보통신부는 이날부터 PCS와 TRS 등 7개 분야에 대한 사업계획서 심사를 6월 1일까지 10일간 도고수련원에서 진행키로 했다.
이 장관은 수련원 식당에서 심사위원들과 조찬을 한 후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심사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것은 장관으로서 당연한 부탁이었다. 아무리 심사가 공명정대하게 이뤄져도 그 결과가 특정업체에 유리하다면 상대 업체에서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문제를 제기할 것은 물어보지 않아도 분명한 일이었다. 기업 간 이해가 걸린 심사에서 공정성이 최선의 방어책이었다.
사업계획서 심사는 도고수련원 4층과 5층에서 실시됐다.
심사위원들은 1인 1실을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도고수련원에는 외부 접근이 철저히 통제됐다. 육지 속의 외로운 섬처럼 외부 세상과 단절시켜 철통 보안을 유지했다.
이 장관은 이날 조찬을 마친 후 서울로 돌아와 정통부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장관은 “6월 1일까지 사업계획서 심사를 끝낸 후 청문평가 등을 거쳐 사업자를 발표하겠다. 그러나 경쟁상대가 없는 분야나 지역사업자에 대해서는 청문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장관은 거듭 “심사 작업은 최대한 공정하게 처리하겠다. 심사위원은 기준에 맞는 사람을 골라내는 것도 힘들었지만 학기 중에 대학교수를 열흘씩 빼내오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심사위원 선정기준과 관련해 “심사위원 선정기준은 해당분야의 전문가로 실력이 있으면서 평판이 좋은 사람 가운데 (통신사업 신청기업과) 연관이 없는 사람 위주로 선임했다”면서 “전공분야도 경영쪽은 법률, 회계, 경제학 등으로 고루 안배했다”고 설명했다.
이 장관은 “심사위원 구성은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서 고루 뽑았고 교수는 서울과 지방, 국립과 사립 등 골고루 선정했다. 심사는 기술과 경영분야로 나눴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말처럼 심사위원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통신개발연구원(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대학 등에서 분야별 전문가 42명으로 구성했다. 해당분야 박사급 전문 인력이었다. 기술부문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인력이 주류를 이뤘다, 사업. 영업부문 등의 평가인력은 통신개발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 인력이 다수를 차지했다.
심사위원 선정 실무를 담당한 이규태 통신기획과장(정통부 감사관, 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의 말.
“사전에 분야별 저명한 전문가들로 리스트를 만들어 장관까지 결재를 받았습니다. 사업계획서 제출기업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사람은 모두 배제했어요. 그런 사람을 심사위원으로 넣었다간 특혜시비에 휘말릴 수 있었습니다. 심사위원 선정과 통보하는 일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다른 일정이 잡혀 있거나 아니면 심사위원 참여를 고사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때는 예비 위원에게 통보를 했습니다. 심사위원 최종 통보는 심사일 하루 전에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심사위원으로 선정돼 기술반장으로 일했던 박항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현 소암시스템 회장)의 증언.
“심사위원 위촉과 관련해 정통부에서 사전에 일정 등을 물어 봤어요. 나중에 심사위원 선정 통보를 받고 합숙할 준비를 해 도고수련원으로 들어갔지요. 10일간 지내려면 옷가지 등 준비할 게 많잖아요. 일단 들어가서는 외부와 일체 연락을 하거나 외출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1반, 2반, 3반으로 업무를 나눴다. 제1반은 PCS와 무선데이터 부문을 담당했다. 제2반은 TRS전국사업 및 단독신청을 제외한 지역사업, 수도권 무선호출 부문을 맡았다. 그리고 제3반은 국제전화, 전용회선 임대, CT-2, TRS지역사업(비경합지역)을 담당했다.
심사는 반별로 기술반과 경영반으로 7명씩을 배정해 자기가 맡은 분야 사업계획서만 심사했다. 42명의 심사위원 중 절반이 경영이고 나머지 절반은 기술부문이었다.
6개 반의 반장은 심사위원들이 호선(互選)했다.
그 결과 이천표 서울대 교수(통신개발연구원장 역임, 현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재균 KAIST 교수(한국통신학회장 역임, 현 KAIST 명예교수), 박항구 한국전자통신연구소 이동통신기술연구단장, 남상우 KDI 박사(현 KDI국제정책대학원장), 이태경 산업연구원 연구원, 구경헌 인천대 전자공학과 교수 등이 반장으로 뽑혔다.
평가는 기술과 영업 부문별로 구분해 사업계획서상의 세부심사항목을 각각 100점 만점으로 채점한 뒤 최고점과 최저점을 제외한 5명의 점수를 평균해 세부 항목별 점수를 산출했다.
정통부가 심사위원 선정을 위해 숨 가쁘게 움직이고 있을 때 신규통신사업신청 법인들도 심사위원 구성을 예의주시했다.
신청 기업들은 정통부와 대학, 연구소 등을 대상으로 정보안테나를 총동원했다. 이들은 심사위원이 심사기준에 따라 객관적이고 엄정하게 평가할 것으로 기대하면서도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는 말처럼 자신들에게 비교적 우호적인 인물이 심사위원에 포함되기를 내심 기대했다. 심사위원의 점수가 사업자 선정의 당락(當落)을 결정하는 것이어서 기업들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다.
A기업 홍보실에 근무했던 B씨의 말.
“기업들이라고 가만히 있지 않았어요. 사전에 심사위원들의 예상 명단을 작성했어요. 그리고 이들을 대상으로 혹시 휴강을 하거나 아니면 장기 출장을 갈 계획이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파악했습니다. PCS군에 속한 대기업들은 다 그런 식으로 심사위원 선정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장기 출장이나 휴강을 한 교수들이 우선 관찰 대상이었어요.”
하지만 기업들의 이런 노력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업들의 예상과는 달리 의외의 인물들이 심사위원으로 많이 참여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선정을 앞두고 정통부 주변에서는 통신정책을 주로 다룬 통신개발연구원에서 대거 참여할 것이란 소문이 꽤 설득력 있게 나돌았다.
하지만 막상 심사위원 뚜껑을 열고 보니 거론됐던 인물들이 다수 빠졌다. 그대신 한국전자통신연구소의 인력이 많이 들어갔다. 대학교수, 변호사 등도 포함됐다.
정통부는 심사과정에 혹시 점수가 공개될 것에 대비해 주도면밀한 채점시스템을 준비했다.
먼저 심사위원들에게 신청업체 명칭을 공개하지 않았다. 명칭을 공개할 경우 심사위원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정통부는 법인명 대신 코드번호로 신청법인을 표기해 평가하도록 했다. 심사위원들이 어느 업체인지 알 수 없게 한 것이다. 그리고 채점한 점수를 다른 사람이 알 수 없게 했다. 모든 심사위원들이 자신의 점수 외는 전혀 알 수는 채점시스템이었다.
박 기술반장의 기억.
“각자 자기 심사항목만 평가를 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이 소신에 따라 객관적으로 공정한 평가를 하도록 한 것입니다. 다른 위원은 그 분야의 점수가 어떻게 되는지를 몰랐습니다. 평가항목에 따라 점수를 매긴 후 곧장 평가위원에게 자료를 넘겼습니다.”
평가위원으로 PCS업무를 지원했던 통신개발연구원 이명호 박사(현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통신정책연구실장)의 말.
“저는 심사는 하지 않고 지원업무를 맡았습니다. 심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행정적으로 다 뒷받침해주었어요. 1992년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에도 참여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힘들었지만 보람있는 작업이었습니다. 남의 일에 신경쓰지 않고 오직 자기 역할에만 충실했습니다.”
정통부에서는 이성해 정보통신지원국장(정통부 기획관리실장, KT인포텍 사장 역임, 현 큐앤에드 회장)과 이규태 과장 등이 심사위원들과 심사기간 동안 숙식을 같이했다. 그 무렵, 도고수련원은 한번 들어가면 족쇄가 풀리기 전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절해고도(絶海孤島)나 다름없었다.
이 과장의 말.
“심사위원들을 비롯해 이곳에 온 사람들의 전화기를 모두 회수했습니다. 내부 전화도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통제를 했습니다. 외출이나 외박은 당연히 허용이 안 됐지요. 정통부 직원들이 24시간 심사위원들의 일상을 감독하고 통제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다 훌륭한 분들이었어요.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공정하게 심사를 했습니다. 모두 자신의 직분에 충실했습니다.”
하루 이틀 시간이 흘렀다. 6월 1일 서류심사 작업이 끝났다. 창살 없는 감옥의 대문이 활짝 열린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10일간의 족쇄를 풀고 수련원 정문을 열고 바깥 세상으로 나왔다.
초여름의 시원한 바람이 가슴 속의 체증(滯症)을 파란 하늘로 날려 보냈다.
심사시원들은 서로 악수하며 ‘그동안 수고했다’고 격려했다. 그리고 아침에 같이 운동을 하며 쌓인 피로를 풀었다.
그러나 심사위원들의 홀가분한 기분과는 달리 정통부 직원들은 3차 청문심사 준비를 위해 피곤함을 뒤로 한 채 긴장의 고삐를 바짝 당겼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