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이브의 악몽’으로 기억될 한국씨티은행 전산시스템 마비 사태는 인천 전산센터 5층에 위치한 공조실의 외기조절댐퍼가 연일 계속된 강추위로 인해 오작동을 하면서 시작됐다. 차가운 공기가 공조실로 계속 유입되면서 공조실의 온도가 급속히 떨어져 수배관 중 하나가 동파된 것이다. 흘러나온 물은 결국 3층 전산실로 쏟아져 내려 6시간가량 모든 은행 업무가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한국씨티은행 사태는 사실 남의 일이 아니다. 데이터센터 전용건물이 아닌 곳을 데이터센터로 리모델링했거나 구형 데이터센터를 운영 중인 모든 기업에서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국내 기업 중 주센터를 데이터센터 전용 건물에서 운영 중인 기업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2중화 등 시스템 측면의 재해복구(DR) 체계도 중요하지만 건물 공조시설이나 방수 상태 등 기본적인 부분부터 재점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대부분 사고 원인은 전산센터 결함=실제로 그동안 국내에서 발생한 전산센터 사고를 살펴보면 한국씨티은행 사태처럼 아날로그적 결함이 원인이 된 사례가 대부분이다. 2000년 동원증권(현 한국투자증권) 전산센터 침수 사고는 소방점검시 부주의로 인한 6층 스프링쿨러의 작동으로 4층 전산센터가 침수되면서 발생했다. 당시 장비 피해액만 180억원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DR에 대한 개념이 미비했던 터라 3일간 거래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로 남았다.
2004년엔 한 정부기관의 A센터 전산실 옆의 팬코일 배관의 파손으로 인해 전산실이 부분 침수되고 하부층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했다. 2008년에도 역시 정부기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스프링쿨러가 작동하고 소방차의 소화액으로 인해 직원들이 PC가 침수됐다.
2009년엔 B컨설팅 회사의 전산실 상부 인테리어 공사 도중 팬코일 배관의 파손으로 전산실이 부분 누수되는 피해를 입었다. 이 컨설팅 회사의 전산실이 위치하던 건물 측은 이 사건 이후로 입주하는 회사와의 법정 분쟁을 피하기 위해 반드시 방수천장을 시공하도록 강력하게 권고하고 있다.
이런 사고는 강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번 겨울 들어 더욱 잦아졌다. 지난 해 12월 한국씨티은행을 시작으로 한 대기업의 C유지보수 계열사, 맥쿼리증권, D특허법인, 초등·중학교 통신실 등 최근 3개월 동안 10여건의 크고 작은 전산실 누수 사고가 터졌다.
사고의 유형도 화재로 인한 스프링쿨러 작동과 소화액 분사, 팬코일 배관이나 스프링쿨러 배관 등 천장 내 수배관의 노후화로 인한 결합 부위 파손, 공사로 인한 배관 손상, 결로현상 등 다양하다. 심지어 자판기 이동 도중 내부 물통이 엎질러져 생긴 사고도 있었다.
◇일반 건물 전산실 재점검 해봐야=한 데이테선터 전문가는 “이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상당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으며 참으로 사소한 원인이 문제가 된 경우가 많다”면서 “문제는 이런 사소한 사건이 큰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삼성그룹 계열의 전산실은 대부분 방수천장 시공을 하고 있으며 B컨설팅 업체의 사례처럼 입주 회사에 방수천장 시공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곳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전산센터 설립을 위한 제안요청서(RFP)에 방수천장 등 건물 자체의 결함으로 인한 재해 방지책을 마련하라는 요구가 최근 들어 부쩍 늘고 있다.
또다른 데이터센터 전문가는 “한국씨티은행 사태 이후 전산센터에 대한 인식이 많이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엔 비용 부담도 있었고 이런 사고들이 외부로 알려지는 경우가 드물어서 전산센터 자체 결함에 대한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IT부서와 시설관리 담당부서를 중심으로 위기의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전문가는 “여전히 대기업을 제외한 많은 기업들의 전산실이 일반 건물에 소규모로 위치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곳들은 지금부터라도 IT 외적인 결함을 철저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주문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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