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세상만사] 박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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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故 박완서 씨

 소설가 박완서 씨가 22일 오전 6시 향년 80세로 유명을 달리했다. 포털에는 ‘박완서 유언’ ‘대표작’ 등 관련 검색어가 줄을 이었고, 임종 소식을 접하고 안타까워하는 네티즌도 많았다.

 고인은 1931년 10월 20일 개성 외곽 지역인 경기도 개풍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서울의 조부모 품에서 자란 고인은 1950년 숙명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 발발로 중퇴했다. 후에 고인은 한국 문학계에 끼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대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고인은 1953년 결혼해 전업주부의 삶을 살다가 1970년 장편소설 ‘나목’이 ‘여성동아’ 공모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1994년 제25회 동인문학상, 1999년 제14회 만해문학상, 2001년 제1회 황순원 문학상, 2006년 제16회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다. 1998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장례식 전날인 24일에는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됐다. 고인은 문학계의 큰 거목으로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를 인정받은 작가였다.

 고인의 대표작으로는 ‘나목’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살아있는 날의 시작’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그 남자네 집’ 등이 있다. 고인의 작품 활동은 전쟁 중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오빠에서 시작됐다. 등단 작품인 ‘나목’에서는 1950년 서울을 무대로, 어이없게 죽은 오빠들과 그 때문에 삶의 의지를 놓아버린 어머니, 그로 인해 황폐한 삶을 사는 여인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박완서 작가는 전쟁과 분단, 가난과 급격한 사회변화로 이어진 우리 민족의 무겁고 어두운 현대사를 웃음을 자아내는 따뜻한 문체로 승화시켜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전쟁’은 박완서 문학의 뿌리였지만, 때로는 중산층의 속물근성을 꼬집기도 했으며 여성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페미니즘 문학을 이끌었다.

 장례식은 소박하게 해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생전에 고인이 다녔던 구리 토평동 성당에서 천주교식 장례미사로 거행 됐다. “문인 중에는 가난한 이들이 많으니 부의금을 받지 말라”는 고인의 뜻을 유족들은 따랐다.

김시소기자 sis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