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새설계-기관장에게 듣는다] <8>이상천 한국기계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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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천 한국기계연구원장(59)은 언뜻 보면 미국의 명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연상된다. 늘 이웃집 아저씨 같은 친근한 미소는 경북 안동 출신이라는 ‘경상도 사나이’의 이력이 무색할 정도다. 하지만 이런 친숙한 이미지 뒤에는 단호한 결단력과 저돌적인 추진력이 숨어 있다.

 영남대 총장 재임 당시 탁월한 행정능력을 보여줬던 이 원장은 지난 2008년 9월 한국기계연구원(KIMM) 수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개방형 연구체계 구축을 공격적으로 주도하는 등 특유의 강한 리더십을 발휘해왔다.

 이 원장에게 새해 소망을 물었더니 현안에 대한 관심과 함께 기관의 비전을 쏟아냈다.

 지난해에 이어 정부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 개편과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출범 등 과학기술계의 여러 쟁점을 지혜롭게 마무리지어 과학기술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 되는 과학기술의 신(新)르네상스 시대를 열어가는 초석을 놓는 한 해를 과학기술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관 비전에 대해서는 한국기계연구원이 전 국가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을 만한 훌륭한 성과를 많이 이뤄 국민에게 인정받겠다는 말을 꺼냈다.

 

 -올해는 원장으로 부임한 지 3년째 되는 의미 있는 해입니다. 스스로 지난 2년여간의 재임 과정을 평가한다면 100점 만점에 몇 점이라고 보십니까.

 △굳이 점수를 매기면 89점 정도 될 것 같습니다. 굵직한 성과도 있었지만 아쉬움도 많습니다. 지난해 특허등록 건수는 210건으로 2009년 112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학술적 성과도 논문게재 수가 2009년 258편에서 2010년 295편으로 14% 상승했습니다. 특히 과학기술색인논문(SCI)은 2009년 135편에서 2010년 162편으로 20% 늘어나는 등 양은 물론이고 질적인 면에서도 성장한 한 해였습니다. 기술이전에 따른 기술료 수입 역시 지난 2009년 46억원에서 지난해 67억원으로 늘었습니다.

 기관장으로 와서 곧바로 ‘초일류 기계기술 전문연구기관’을 위한 중장기 비전 2020을 수립하고 국가 어젠다, 정부의 로드맵, 기관 역량 등을 고려한 2대 대표 브랜드로 ‘나노·마이크로 생산장비’와 ‘환경·에너지 플랜트 기계장비’를 선정해 선포했습니다. 지난 2년여간의 선택과 집중 투자가 이제 연구 성과로 그 결과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올해도 2대 대표 브랜드 중점 육성은 이어갈 계획인지요. 기계연이 올해 설립한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 역시 첨단 의료기술 등에 특화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선택과 집중’은 특히 다른 정부출연연구기관의 롤모델이 될 정도로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자부합니다. 강점 분야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부적절한 예산 집행을 차단하는 것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의 의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는 첨단 의료기계 원천기술 개발 및 그린에너지 핵심소자 생산시스템 기술 상용화에 집중하고, 본원은 올해도 정부출연금의 80% 이상을 2대 대표 브랜드에 집중 투자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2대 브랜드에 313억원을 투입한 결과, 김동수 박사의 ‘나노박막 태양전지 생산용 롤(Roll) 프린팅 기술’과 이학주 박사의 ‘10㎚급 나노측정 원천기술’이 각각 교육과학기술부의 ‘국가연구개발사업 우수 성과 100선’에 선정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2009년에는 프린팅 공정장비 및 제조시스템의 특허기술 이전으로 100억원의 기술료 계약을 성사하기도 했습니다.

 향후 글로벌 기계산업의 경쟁이 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도 ‘공평’의 논리에 빠져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평한 것과 공정한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철저하게 경쟁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글로벌 측면에서는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의 추격에 긴장해야 합니다.

 -‘경쟁논리’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 인상적입니다. 기계연구원은 또 다른 기관에 비해 중소기업 지원에 상당히 적극적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도 경쟁논리가 적용됩니까.

 △출연연은 정부출연연구기관으로서 사회적 책임이 있습니다. 환경이 열악한 기계 분야 중소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애로기술을 밀착 지원해줌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정부출연연구소의 고유 임무라고 봅니다.

 하지만 단순히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중소기업과의 협력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아닙니다. 일방적인 지원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지난해 중소기업청이 발표한 ‘산학연 공동 기술개발사업’ 평가결과에서 최우수 연구기관으로 선정된 힘이 여기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은 갖고 있지만 제품의 오차 등을 측정하는 이론·해석 등의 분야에 어려움이 있고, 연구원은 이론을 비롯한 해석기술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반면에 제품으로 구체화하는데 익숙하지 않다면 양측이 협력해 더 나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연구 성과를 실제로 잘 쓰일 수 있게 실용화하는 데에는 기계 분야의 중견·중소기업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에 기술이전 등을 통해 산업계와의 소통을 강화하면 연구개발 아이디어와 도움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기계 분야의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 26곳을 패밀리기업으로 선정해 지원, 협력하는 ‘KIMM-패밀리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이 제도를 확대 시행하는 데 이어 종전의 기업기술지원센터를 중소기업 지원에 특화하고, 산업계 연계형 사업예산도 가용 재원을 활용해 대폭 증액할 계획이다.

 -성과에는 보상이 따라야 하고, 또 엄정한 평가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는데요.

 △맞습니다. 올해 ‘성과 중심의 경영시스템 구축’을 기관 운영의 10대 중점 추진과제로 삼은 이유입니다. 이와 함께 사람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나아가 연구원의 체질 개선을 위해 철저히 성과에 따라 대우받는 평가 및 보상체계를 강화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지난해 특히 여러 가지 선진적인 경영제도를 도입했었는데 올해 운영계획은 어떤지요.

 △지난해 처음으로 영년직 연구원 선임, 스타연구실 선정, 또 평가의 질적 측면을 강조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 기반의 평가제도 도입 등 새로운 선진제도를 여럿 도입했습니다. 올해는 이들 제도가 연구원에 정착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특히 주요사업 재원을 활용해 연구비 4억5000만원을 지원한 ‘스타연구실’ 제도는 연구원 안팎으로 큰 반향을 불러왔습니다. 올해는 이 제도와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체계화할 계획입니다.

 또 올봄에는 해외 우수 인력 발굴을 위해 미국 서부지역 대학에서 채용설명회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글로벌 리크루팅은 물론이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우수 인력을 유치해 공동연구도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이밖에 지난해 10월 연구관리체계 선진화를 위해 구축한 연구개발 전 주기 통합관리 전산시스템의 안정적인 운용에도 심혈을 기울일 방침입니다.

 -지난해 말 국가과학기술위원회의 기능과 위상을 강화하도록 과학기술기본법이 개정됐습니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는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내부 조직문화는 어떻게 끌고 나갈 계획인지요.

 △올해 4월 새로운 국과위 출범을 앞두고 정부출연연구기관마다 성과연봉제 도입, 건전성 제고와 방만 경영사례 개선 등과 같은 기관 선진화를 위한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우선 연구현장에 있는 직원들의 목소리를 최대한 많이 들으려 합니다. 재임 이후 3C, 즉 투명성(Clean), 자신감(Confidence), 협력(Collaboration)을 주창한 바 있습니다. 윤리경영은 물론이고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도전정신과 창의력을 가진 조직의 바탕을 더욱 공고히 다지는 것입니다. 이 같은 조직문화 개선은 연구성과로도 직결됩니다.

 개개인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도화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면 조직의 발전을 가져오는 선순환이 이어집니다. 지난해 연구원 내 공간과 장비의 효율적인 운용을 위해 공간을 재배정하고, 공동장비 활용이 가능한 개방형 연구실을 구축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소통의 다각화를 통해 열린 조직문화를 이끌어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상천 원장은>

 영남대 총장 출신인 이상천 원장은 연구원 내에서 ‘트러블 슈터(troubleshooter)’ 즉 해결사로 통한다.

 해법을 내놓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직접 명쾌하게 답을 내놓는 스타일이다. 특유의 친화력과 리더십으로 연구원 안팎의 신망이 두텁다.

 1974년 서울대 기계공학과를 졸업하고, KAIST와 미국 노스웨스턴대학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이 원장은 1976년 영남대학교 기계공학부 교수로 부임해 30여년 동안 열전달 분야에서 활발한 학문적 성과를 거뒀다.

 만 49세의 나이에 교수 직선으로 영남대 총장에 오른 뒤에는 투명하고 실용적인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대학의 연구력 강화는 물론이고 산학협력 활성화를 이끌어 학교 수준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 2008년 9월 한국기계연구원장에 부임한 뒤 연구원의 개방형 혁신을 진두지휘하며 글로벌 어젠다 발굴, 산학연 협력은 물론이고 출연연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데도 앞장섰다.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KAIST 총동문회장 등으로 활동하며 과학기술계의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기계연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 설립>

 한국기계연구원은 올해 ‘귀한 아들’을 얻었다. 제조업의 전통이 강한 도시, 대구에 기계연 부설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를 설립한 것.

 기계연구원은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를 첨단 의료기계 원천기술 개발, 그린에너지 핵심소자 생산시스템 기술 상용화 및 기업 기술 지원에 특화했다.

 첨단 의료기계기술은 정부가 추진 중인 대구·경북 첨단의료복합단지 사업과 연계하고, 그린에너지 핵심소자 관련 기술은 대구·경북 선도산업 육성사업 등 지역사업과 연계해 명실상부한 원천기술 공급원 역할을 해나가기 위해서다.

 올해는 설립 첫해를 맞아 의료용 로봇과 진단기기 등 첨단 의료기계 연구에 핵심 연구역량을 집중할 계획이다. 뇌졸중으로 인한 뇌·신경 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재활치료 로봇시스템 개발이 단연 돋보이는 연구 분야. 뇌와 신경, 사람의 동작원리 연구에 기반을 둔 효과적인 로봇치료 방법이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에서 태동하고 있다. 고령화 사회를 맞아 물리 재활치료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한 발 빠른 연구과제 선점이다.

 한편 기계연구원이 대구·경북지역에 진출한 것은 이 지역의 기계산업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대구지역 기계 관련 중소기업의 기술개발 능력이 부족해 기계 분야 R&D의 대구지역 참여 비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러왔다. 원천기술과 기술이전 역량을 보유한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대구시는 센터 부지 제공은 물론이고 향후 취약한 산업 인프라 구축을 위해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를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대구융합기술연구센터의 올해 예산은 대구시 지원예산을 포함해 총 55억원 규모로 기계연구원은 센터 활성화를 위해 초기단계부터 예산을 집중 투입하고 있다.

 이상천 원장은 “향후에는 첨단신약이나 의료기계 등 의료 분야 R&D 허브로 발전해 나가겠다는 대구시의 산업전략과 연계해 센터의 위상을 보다 강화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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