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뒷산에서 친구와 전쟁놀이를 하고는 했다. 1975년 초등학교 1학년 여름께부터 1980년 6학년 언저리까지다. 기껏해야 나무총을 들고 “땅, 땅” 목청 돋우며 뛰어다닌 것이었지만 매우 진지했다. 머리와 허리춤에 풀을 꽂아 위장해 가며 고지 탈환 작전까지 짰을 정도였으니까. 어렴풋이 “구름이 가~안다. 하늘~도 흐른다”고 노래했던 기억도 되살아났다. 1975년 6월부터 1978년 4월까지 KBS에서 방영한 TV 드라마 ‘전우’의 주제곡 첫 가사다. 이 노래와 드라마 인기, 정말 대단했다. 오죽했으면 드라마가 끝난 지 34년이나 지났음에도 주제곡을 읊조릴 수 있겠는가.
“대략 쇼와(昭和) 6년(1931년), 7년, 8년 정도에 일본인의 생활에 군국체제가 완전히 뿌리를 내려서 군가는 유행가처럼 불렸고 아이들 사이에서는 전쟁놀이가 상당히 유행했습니다(1권 78쪽).”
이 책 ‘쇼와사:일본이 말하는 일본 제국사’를 쓴 한도 가즈토시는 “저도 철이 들 무렵에는 매일 전쟁놀이를 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신문이 떠들썩하게 선동을 해대니 일본 전체에 전쟁을 해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1권 79쪽)”고 썼다. 한도 가즈토시는 1930년생이다. 그와 나의 나이 차이만큼 일본과 한국 어린이의 전쟁놀이 시차가 꼭 삼사십년은 아닐 것이다. 일단 ‘쇼와사’를 읽는 눈길이 ‘전쟁놀이’라는 단어에 붙들려 이것저것 곱씹어 보게 됐다고 해두자.
한반도와 일왕 히로히토의 삶(쇼와:1926년 12월 25일~1989년 1월 7일)을 서로 떼어놓을 수 없기 때문일까. 눈길을 붙드는 단어와 문장이 곳곳에 도사렸다.
1931년(쇼와 6년) 11월의 일본은 “신문들이 모두 군부의 선전기관처럼 변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1권 72쪽)”이었다. “매스컴과 일체화한 국민적 열광이라는 게 얼마나 무서운지 잘 말해주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의 일본인은 “점령군(미국 중심 연합군)의 잔반을 받아서 끓인 것을 ‘잔반 스튜’라고 불렀는데 그런 음식을 먹으며 배고픔을 견뎌냈다(2권 46쪽).” 그해 11월 연합군 총사령관인 맥아더는 여러 일본 점령 정책을 내놓으면서, 고등경찰이 비밀리에 심문을 해 시민을 마음대로 할 수 있던 ‘비밀심문 사법제도’를 철폐했다(2권 58쪽). 자신이 여러 점령 정책으로 ‘군대 없는 평화로운 일본’을 만들었다고 자랑했던 맥아더는 “쇼와 25년(1950년) 한국전쟁 때 일본이 군대를 가질 것을 강력하게 주장했다(2권 136쪽)”는 등 쉽게 눈길을 거둘 수 없는 단어와 문장이 많다.
여러 단어와 문장에서 우려낸 생각이 ‘일본과 한국이 너무 비슷하다’는 느낌에 닿아 벌벌 떨렸다. 특히 여러 힘 있는 나라의 야심이 격렬하게 충돌했던 1940년대 말 한반도 정세와 비슷한 대립각이 2010년과 2011년으로 전이된 것 같아 떨림 폭이 커졌다. 지난 11일 아사히신문은 “일본이 한일 상호군수지원협정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임기가 2년가량 남은 이명박 정권 집권기에 방위협력을 제도화해 두자는 목적도 있다”고 보았다. 군사협정, 전쟁놀이, 전쟁…. 모두 쉽게 입에 담기가 두려운 단어들인데….
더 쓸 수 없는 이 좁은 지면과 얕은 지식·경험·글발이 아쉽다. 읽으며 생각하고 토론해볼 게 많은 책이다.
한도 가즈토시 지음. 루비박스 펴냄.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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