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귀는 오래전 사람들의 중요한 운송 수단이었다. 말보다 덩치는 작지만 힘은 무척 센 동물이기 때문이다. 흠은 당나귀가 고집불통인 탓에 부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 그래서 사람들은 묘안을 생각해냈다. 당나귀가 제일 좋아하는 당근을 입에 닿을 듯 말 듯 매달아 놓고 채찍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방법이다. 그러면 눈앞에 보이는 당근의 유혹에다 아픈 매질에 못 이겨 뛰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회유와 협박, 보상과 처벌의 의미로 흔히 쓰이는 ‘당근과 채찍’의 유래다.
한 국가의 외교 전략에서 정부 시책, 기업의 경영 전략, 심지어 대인 관계에 이르기까지 당근과 채찍은 우리에게 너무나 일상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동물적 본성에서 유래된 당근과 채찍의 개념을 과연 복잡다단한 인간 세상에도 단순하게 적용할 수 있을까. 책은 지금껏 우리가 알고 있던 당근과 채찍은 모두 잘못된 이해에 둘러싸여 있다고 강조한다. 보상과 처벌이라는 단순 이분법적 차원이 아닌, 인간의 비이성을 토대로 한 보다 복잡하고 다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보자. 고객 감동 서비스로 유명한 미국 최대 온라인 신발업체 자포스. 이 회사는 신입 사원 교육을 마친 직원들에게 생소한 제안을 한다. “지금 자진 퇴사하면 2000달러의 보상금을 주겠다”고. 얼핏 보기엔 귀가 솔깃한 제안이다. 결과는 예상대로다. 98%의 직원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회사에 남기를 선택한다. 달콤한 제안을 거부한 직원들은 더 큰 애사심을 갖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통해 더 많은 성과를 만들었다. 이는 2000달러라는 매몰 기회비용의 덫에 빠지는 인간 심리를 이용한 당근책이다. 대다수 직원이 제안을 거절하기 때문에 실제로 드는 비용은 거의 없지만, 엄청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유인책이다. 성과에 보상을 한다는, 큰 당근일수록 효과적이라는 기존의 통념은 여기서 무너진다.
책은 당근과 채찍에 대한 단순한 믿음을 버리라고 조언한다. 자포스 사례처럼 큰돈 들이지 않고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기막힌 당근이 있으며, 당근과 채찍을 함께 동원해 성과 창출과 조직 통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여러 행동 경제학자 및 심리학자들과 함께 수많은 사례를 실험 통계 기법으로 공동 연구한 결과물로 이 책을 탄생시켰다. 법학·경영학·경제학·심리학을 넘나들며 실증적 결과를 토대로 행동 경제학을 완성했다는 점에서 단순 자기 계발서와는 확연히 다르다. 지난 2009년 화제를 불러 모았던 책 ‘넛지’가 행동 경제학의 이론을 부각했다면 ‘당근과 채찍’은 실천적인 면에 중점을 두었다.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을 적극 활용해 개인과 조직이 성과 창출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게 책의 결론이다. 크게 네 가지 전략을 통해서다. 1원도 주지 않고 100억원의 인센티브 효과를 낼 수 있는 동기부여책, 즉 직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이 첫 번째다.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참여를 유도하는 정책 설계법이 두 번째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손실 회피 경향을 이용해 줬다 빼앗는 방법도 효과적일 수 있고, 성공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방법이란다.
이언 에어즈 지음. 이종호·김인수 옮김. 리더스북 펴냄. 1만6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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