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30>

 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 시작과 끝<30>

 

 “가지려면 먼저 버려라.”

 

 1995년 12월 21일 오전 11시.

 정보통신부 대회의실에서 이석채 장관 취임식이 진행됐다. 직원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단상에 오른 이 장관은 취임사를 낭독했다. 장관 취임사에 귀를 기울이던 직원들은 이내 깜짝 놀랐다. 이 장관의 취임사는 내용이나 형식 면에서 파격적이었다. 과거 장관들과는 영 딴판이었다.

 이 장관은 정통부에서 미리 준비했던 취임사를 읽지 않았다. 그 대신 자신이 직접 메모한 내용을 꺼내 취임사로 대신했다. 이 장관이 강조한 키워드는 ‘변화’였다. 경제부처로 거듭나라는 주문이었다.

 이 장관은 “정보통신정책도 이제는 전체 거시경제의 테두리 안에서 수립해야 한다”면서 “정보통신부가 이제는 집행부서에서 정책부서로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막힘이 없었다.

 그는 “한국경제가 일류 경제가 되려면 많은 통신기업들이 생겨나고 성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각종 행정 규제를 완화해 나가겠다”며 “정보화는 세계적인 추세로 국내 통신시장의 개방 확대와 통신산업의 국제화를 적극 추진해 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장관의 이런 발언은 소극적이고 배타적인 업무스타일에서 벗어나라는 발상의 전환을 요구한 것이었다.

 12월 20일 오후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취임사를 준비해 이 장관을 방문했던 서영길 정통부 공보관(티유미디어 사장, SK텔레콤 고문 역임, 현 세계경영연구원 창조경영연구소장)의 기억.

 “이 장관은 큰 그림을 그리고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대단했습니다. 개각 발표 후 저와 박승규 총무과장(한국인터넷진흥원장 역임, 현 정보통신기능대학장)이 취임식과 관련해 경제기획원 차관실로 이 장관을 방문했습니다. 취임사는 공보관실 업무여서 준비해 간 취임사를 이 장관에게 드렸습니다. 내용을 쭉 읽어 보더니 ‘내가 따로 생각한 게 있다’면서 취임사를 따로 정리하셨습니다. 내심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과거 장관들은 부내 사정이나 정책의 균형을 생각해 내부에서 만든 취임사를 그대로 읽었거든요. 나중에 정통부 산하 전 기관 직원들에게 보내는 회보에는 이 장관께서 하신 말씀에다 처음 정통부에서 만든 취임사를 가필해 내려 보냈습니다.”

 이 장관은 취임식이 끝나자 상견례를 겸해 출입기자들과도 만났다.

 그는 기자들에게 “정보통신정책은 국민을 상대하는 것이므로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정보통신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고 다짐했다.

 어떤 일이건 지나고 보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일지라도 사고와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당시 정통부가 이 경우에 속했다.

 이 장관의 증언이다.

 “문민정부가 체신부를 정보통신부로 확대 개편한 것은 미래에 대비해 제도나 관행을 바꾸라는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정통부는 정책부서로서 아직 준비가 덜 돼 있었습니다. 통신업체 관리에 치중했지 정보화시대를 맞아 실제로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습니다. 직원들도 정통부를 경제부처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누에고치처럼 둘러싸여 교육도 자기들끼리 받았습니다. 그래서 과장급 이상은 무조건 경제공부를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경제관련 서적을 사 주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는 행정직 외에 재경직도 뽑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정통부가 국가경제 전반에 미치는 시각을 가질 경우 정보통신정책의 질과 내용이 더 알찰 것이라는 것이 이 장관의 생각이었다.

 이 장관은 직원들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경제 마인드’를 갖도록 강조했다. 월례조회에서도 “정통부는 본격적인 경제부처 기능을 강화하고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당부했다.

 이 장관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답게 폭넓은 시각에서 정보통신정책에 접근했다고 한다.

 경제관료로서 그의 정책에 대한 접근 시각과 방식은 당시 정통부 직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기존 정책 틀을 완전히 벗어나는 접근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의 말.

 “직원들에게 공급 측면만 보지 말고 수요 측면을 보라고 강조했습니다. 수요가 생겨야 정보통신산업이 발전하는 것 아닙니까. 수요를 발생시키는 일도 정책입니다.”

 이런 정책접근이 나중에 정통부가 ICT를 기반으로 한국 경제성장을 주도하는 미래부처로 자리매김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 장관은 내부 인사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행정적 사무관 일색에서 벗어나 외부에서 인력을 충원했다. 그는 승진하는 직원은 체신공무원이 아닌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교육을 받도록 했다. 아울러 가능한 한 해외에 많은 인력을 내보내고자 했다.

 다시 이 장관의 회고.

 “세계로 눈을 돌리라고 강조했어요. 우리식이나 우리들 눈만으로는 세계 정상에 설 수 없지 않습니까.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라는 말도 있잖아요.”

 이 장관은 취임과 동시에 정통부를 정책부서로 격상시키고자 노력했다.

 이 장관은 두 가지 정책숙제를 안고 취임했다.

 청와대의 ‘오더(지시)’였다. 하나는 신규통신사업자를 선정할 때 추첨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또 하나는 PCS기술표준으로 CDMA방식을 고집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모두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와 관련한 청와대의 ‘오더’였다.

 “청와대가 그런 오더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에서 추첨제는 절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 방식은 정통부가 스스로 정부이기를 포기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다음은 PCS기술표준으로 CDMA방식을 고집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제외한 나머지 정책은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했습니다.”

 이 장관에게 그런 오더를 전한 사람은 한승수 대통령 비서실장(국무총리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이었다.

 이런 오더는 곧 대통령의 뜻이기도 했다. 대통령 비서실장이란 대통령의 대리인이며 대통령의 복심(腹心)인 까닭이다.

 변화와 경제 마인드를 강조한 이 장관의 정책 행보에 관련업계는 비상한 관심을 기울였다.

 과거 장관들은 정통 체신관료나 아니면 과학자, 정치인 출신이어서 대략적인 정책 구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장관은 경제관료인데다 취임초기부터 변화를 앞장서서 강조해 그의 정책 변화를 예측하기가 관련업계로서는 쉽지 않았다.

 한 해를 역사 속에 묻고 1996년 새해를 맞았다.

 새해는 문민정부에 정치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일정이 잡혀 있었다.

 우선 4월에 15대 총선을 앞두고 있었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권 관심은 온통 공천작업에 쏠려 있었다. 그해 4월 총선에 청와대 고위인사 3명이 국회로 진출했다. 한승수 비서실장과 한이헌 경제수석, 홍인길 총무수석 등이 신한국당 공천을 받아 15대 금배지를 달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1월 1일 ‘세계일류 국가건설의 꿈을 나누며’라는 제목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김 대통령은 “일류 국가건설을 위해 새 출발을 하자”며 “경제발전을 가속화하여 국민 여러분이 편안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김 대통령은 1월 5일 오전 과천 정부 제2청사에서 첫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했다. 나웅배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현 전경련 기업윤리위원장)을 비롯한 경제부처 장관, 이경식 한국은행총재(경제부총리 역임)와 청와대 수석비서관 등이 참석했다.

 김 대통령은 이날 “자금난과 인력난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보호와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정책을 총괄하는 중소기업청 신설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김 대통령은 “경제팀은 삶의 질을 높이는 복지증진에 신경을 써 달라”며 “부처 이기주의로 정책결정이 표류하거나 지연되는 일은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1996년 1월 8일 월요일.

 정통부는 1996년도 주요업무계획을 발표했다. 지난 5일 경제장관회의에서 이석채 장관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이었다.

 이 장관은 대통령에게 신규통신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공정한 심사기준을 마련해 최대한 엄격하게 심사해 추첨에 의해 사업자가 선정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투명성과 공정성을 위해 그동안 정통부가 확정했던 동점일 경우 사업자를 추첨으로 선정하겠다는 기존 방침을 바꾸겠다는 의미였다.

 정통부가 이날 발표한 1996년 주요업무는 △범국가적인 정보화기반 구축 추진 △초고속정보통신사업의 본격 추진 △정보산업의 전략적 육성 △통신사업의 경쟁체제 정착 △방송관련 산업의 육성지원 △우편서비스의 품질향상 △정보통신기술의 고도화 △국제협력 활동의 강화 △전파환경 개선 및 이용질서확립 △이용자의 편익증진 등이었다.

 이 가운데 업계의 관심은 통신사업의 경쟁체제 정착에 집중됐다. 1996년 상반기에 허가하기로 한 7개 분야 신규통신사업자와 관련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정통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절차로 능력 있는 사업자를 선정하고 대기업 중복신청을 제한해 다수기업의 참여를 유도하겠다고 말했다. 또 지역사업에는 중소기업 및 중견기업만 참여토록 하고 1997년까지 전면적인 국내 경쟁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신규통신사업자선정을 추첨하지 않고 서류심사로 선정하기로 했다.

 이런 정책변경이 훗날 이 장관이나 정통부에 두고두고 벗을 수 없는 멍에로 작용할 줄은 그 당시는 아무도 몰랐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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