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이 도입되기 전이다. 도서관은 수집한 책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해 서지정보를 기록해 책자 목록을 만들고, 시렁(서가)을 만들어 목록에 기록된 순서에 따라 책을 보관하며 이용해 왔다. 나름 과학적인 보관과 이용법이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목록 기록이 책이 수집된 순서에 따라 책이 보관된 서가가 건물 내에 고정된 탓에, 필요한 책을 찾기 위해서는 ‘시력 탐색’이라는 수고가 필요했다. 이용을 위해서는 도서관을 방문해야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아야 했다. 기원 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사서 칼리마코스가 ‘피나케스’라는 목록을 만든 이래, 오랜 세월 도서관에서는 이 방법으로 책을 이용해 왔다. 이 때문에 도서관은 애써 수집한 책을 이용자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이용자는 필요한 책을 식별하고 이용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낭비해야 했다.
카드목록이라는 검색시스템 개발로 필요한 책 존재 여부를 알아내려 목록을 뒤적이는 수고는 덜게 됐다. 하지만 책은 여전히 서가에 보관해온 까닭에 ‘방문’이라는 이용자 수고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컴퓨터와 네트워크 기술 도입으로 카드 목록에 의해 기록·검색되던 서지정보가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기록·검색됐다. 이어 전자도서관을 거쳐 디지털도서관이라는 새로운 개념 도입으로 도서관을 방문하지 않고도 원격지에서 도서관의 책을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필요가 발명을 낳는다’고 했던가. 편리성과 경제성에 기인한 ‘필요성’이 도서관 환경을 첨단으로 변신하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도서관은 꿈의 도서관, 디지털도서관 시대를 여는 것이 가능하게 됐다. 하지만, 지금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다. 저작권법 하의 도서관에서 디지털복제·전송에 대한 ‘공정사용(fair use)’ 범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저작권법은 사회적 공익 시설인 도서관에 대해 공정사용 차원에서 인쇄된 책을(일정한 범위 내에서) 복제해 제공하는 것을 오래 전부터 허용하고 있다. 현재도 그렇다. 그러나 도서관에 보관된 책을 디지털화해 제공하는 것과 관련해서는 공정사용 차원의 복제 전송범위를 도서관 내의 일정 수 컴퓨터에서 열람하는 것으로 제한하고 있다. 또 상용 전자책은 공정사용에 의한 복제 전송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도서관은 고민이 많다. 디지털 도서관이 활성화되려면 도서관에 보관된 인쇄 책의 디지털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또 이용자가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의 서비스를 위해서는 현재 제시된 보상금을 지불하는 방법으로 복제 전송권을 확대 하든지 아니면 저작권자와 도서관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공정사용 원칙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아니면 상용 전자책 도입으로 이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디지털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
어디 그뿐인가. 공익과 사익을 자처하는 공용 또는 상용 디지털 인프라의 등장으로 이용자들의 선택에 변화가 일고 있는 것 또한 고민거리다. 홈페이지의 검색과 연결 그리고 커뮤니티에 집중해오던 포털은 거대한 복합 디지털도서관을 이룬 지 오래다. 또 이런저런 일명 디지털도서관 프로젝트들이 도처에서 진행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도서관의 오랜 권위가 도전받고 있는 것이다. 도서관은 이제 그 미래를 위해 새롭게 전개되는 디지털 정보 패러다임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정책과 전략을 마련해야만 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미래를 위한 또 다른 변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나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종문 경성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jmlee@k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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