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대덕, `창업국가`를 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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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구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이사장

17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전개된 개혁적인 조선의 실학 학풍을 북쪽 중국에 가서 배운다는 의미로 북학파라고 했다. 북학파라고 하면 우리는 박지원, 홍대용 등을 떠올린다. 이외에도 이덕무,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 등 들으면 익숙한 그리고 유명한 학자들이 많다.

조선후기 실용학문의 뿌리를 다진 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지근거리에 살면서 상호 교류를 통하여 학문과 이념에 대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박지원, 이서구, 이덕무는 원각사 북쪽에 살았고 유득공과 유련 등은 경행방(낙원동 일대)에 거처했다. 북학파 학자들 상당수가 대개 옛 원각사 터에서 창경궁에 이르는 어간에 살았던 것이다. 지금의 종로구 견지동, 경운동, 관훈동 등에 해당된다.

조선후기 북학론이 실용적·발전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수용적 자세와 함께 습득한 선진 문물을 상호 교류하며 협력하려는 노력이 곁들여졌기 때문이다. 요즈음 말하는 클러스터를 이루면서 신분이나 연령의 차이를 뛰어 넘으며 시문과 학문을 교류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계와 벤처업계에서 ‘창업국가(Start-up Nation)`라는 책이 필독서가 되면서 이스라엘 배우기에 열심이다. 이스라엘은 책임의식과 운명공동체라는 휴먼 네트워크 개념의 클러스터를 통해 과학기술과 벤처 최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용만이 유일한 경쟁력이라면 다른 나라도 더욱 싼 비용을 제공하며 성공적 클러스터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성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그들의 역사적 배경에서 비롯된 측면은 있지만 구성원들 상호간에 공유하는 운명공동체적 책임의식으로 이스라엘이 21세기형 선진국의 전형을 이뤄가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대덕이 산학연 혁신클러스터로써 국내 최초의 연구개발특구로 지정됐다. 그동안 산학연 연계를 통한 기술사업화와 물적·인적 네트워크 형성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산학연 구성원·지역사회의 네트워크 강도는 약한 것 같다. 출연연구기관 간 칸막이뿐만 아니라 대학, 기업 등 구성원 간에 단절감이 남아 있다.

기반구축기를 지나 도약기로 접어든 대덕특구가 원대한 꿈, 세계적 초일류 혁신클러스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국내 최고의 연구인력과 기관이 지리적으로 집적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산학연 구성원의 강한 네트워크 형성과 일체감 조성이 필요하다.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나 대덕특구가 세계 초일류 성공 클러스터의 작동원리를 갖추고 성장을 앞당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특구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기관과 구성원 그리고 지역사회가 보다 열린 마음으로 나서야 할 시점이다. 산학연 간 분야별로 소통과 교류가 활성화되고 인적·물적으로 강한 네트워크가 형성되며 나아가 일체감까지 조성되어야 한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격언이 주는 의미가 이런 것 아닐까?

이스라엘의 성공사례가 시사하는 창의성, 유연성, 개방성은 이러한 바탕 위에서 저절로 나온다고 본다. 융·복합 패러다임 시대의 기본조건이기도 하다.

특구 내 산학연 혁신 주체들과 정부, 지역사회가 비전을 공유하고 비전실현을 위한 열정으로 뭉쳐 나갈 때 비로소 대덕특구는 세계가 주목하는 명품클러스터가 될 수 있다.

이재구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이사장 jglee7@dd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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