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운 기자의 백투더 퓨처]12월 3일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천체 망원경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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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이의 망원경은 달과 행성 연구의 시초를 마련한 동시에 근대 이전의 인식론과 우주론을 뒤엎은 위대한 발명품으로 꼽힌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천체 망원경으로 처음으로 우주를 관측한 1609년 8월 25일을 기념비적인 날로 꼽는다. 지난해 400년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행사를 열어 이날을 기념하면서 이 사실은 더욱 공고해졌다.

과학사에서 최초의 발명이나 발견은 기존의 통념과 이론을 뒤엎어 인류가 한 단계 도약하는 발판을 만들기 때문에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최초의 발견을 발전시켜 완성까지 이르는 노력이 없다면 혁신적인 출발은 빛을 발하지 못하게 마련이다.

갈릴레이의 망원경 역시 끊임없는 발전과 진화를 거듭한 이후에야 그의 업적에 토대가 되는 발명품이 됐다. 갈릴레이는 처음 망원경을 고안한 날로부터 10여년 후인 1621년 12월 3일에야 수많은 천체관측과 지동설의 토대를 만든 천체 망원경을 완성한다. 그가 1609년에 발명한 망원경이 그의 순수한 발명품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발명품을 좀 더 개선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도 있는 상황에서 1621년 망원경의 완성은 갈릴레이의 업적에서 더욱 유의미한 것으로 비친다.

허블과 같은 현대 천체 망원경이 진화할 수 있는 발판이 된데다, 망원경을 완성한 시기가 로마 교황청으로부터 압박이 시작된 때였기 때문이다.

1616년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가 로마 교황청의 금서로 지정됐고, 갈릴레이 역시 지동설을 유일한 진리로서 지지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관찰한 사실을 믿고, 지동설을 입증하려는 그의 연구는 지속됐던 것이다.

좀 더 정교하게 완성된 천체 망원경으로 천문을 관측하던 갈릴레이는 지동설을 확신하고 1932년 저서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2대 세계 체제에 관한 대화’를 발간해 지동설을 주장했다. 이듬해 갈릴레이는 종교 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8년간 가택연금을 받게 됐다.

지동설로 천문학에서 일대 혁신을 일으킨 것은 물론이고 수학과 물리학에서도 기존의 이론을 뒤엎어 혁신의 상징이 된 갈릴레오 갈릴레이.

사람들은 그의 사소한 발견 하나조차 잊지 않고 기념한다.

미국의 록밴드 카울릿 애니싱(Caulit anything)은 3일에서 4일 갈릴레이의 망원경 발명을 기념해 버지니아주 리치몬드에서 콘서트와 함께 별을 관찰하는 이벤트를 기획 중이다. 최초의 발명, 최초의 관측에 지나지 않고 수십년의 노력 끝에 과학적 진리를 밝혀낸 천재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일 것이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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