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 핵심기술 등 첨단기술 유출을 방지하고 산업보안을 강화하는 근본적인 길은 기술을 다루는 엔지니어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정병일 인하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기술유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술적인 보안조치도 필요하지만, 사람에 대한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며 이 같이 말했다. 정 교수는 2008년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산기법)’ 제정 당시부터 법률 제정 작업에 참여하는 등 국내 산업보안 수준 제고를 위해 일해 왔다. 그는 지난 25일 산업기술유출 방지 및 보호에 관한 활동에 기여한 공로로 지식경제부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항공공학과 출신으로 법조계에 입문한 그는 첨단기술을 연구하는 기술자들에게 합당한 대우를 해주고 최선의 연구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기술유출을 막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기술 강국으로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정 교수는 “1970년대에 국가가 지정한 과학자는 동사무소를 통해 쌀을 보내줄 정도로 엔지니어를 귀하게 여겼다”면서 “쌀 자체보다도 국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생각에 엔지니어들의 자부심과 애국심이 대단했고, 자연스럽게 기술유출 등 산업보안과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인적관리가 산업보안은 물론 국가안보를 지키는 핵심이라는 뜻이다.
현재 산기법 개정을 통해 산업보안 수준을 강화하는 노력이 계속 진행 중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법을 운영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는 게 정 교수의 생각이다. 정 교수는 “산기법 11조에 따르면 국가 핵심기술을 수출할 경우 지경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승인을 받지 못해 수출을 못하더라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서 이 같은 조항은 기업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수 있는 만큼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법 운영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8년 쌍용자동차가 상하이자동차에 매각될 당시 산기법이 제정됐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산기법의 존재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고 정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국내에만 한정됐고 개인 간에 일어나는 일만 규정했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법률(부영법)’에서 발전한 산기법이 이미 2008년에 제정됐지만 일선 현장에서는 산기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면서 “제정한 법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현장에서 일하는 담당자들의 인식개선”이라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3일 치러진 산업보안관리사 자격시험에 600여명의 응시생이 몰린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진단했다.
이경원기자 wo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