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게임] 게임 중독이 말하는 것과 숨기는 것

정신질환 아니지만‥`중독` 표현 남발

아이들이 시험공부는 안 하고 게임하는 것을 본 엄마는 “게임 중독이라서 큰일이야”라고 한탄한다. 어르신들은 엽기적인 범죄에서 범인이 게임을 했다는 보도가 나오면 “게임 중독이 사람 하나 망쳤구먼” 하고 생각한다. 국회의원들은 셧다운제로 청소년의 게임 중독을 막겠다고 팔을 걷어붙인다.

대한민국은 게임 중독에 빠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게임 중독이라는 개념의 함정에 빠졌다. 게임에 중독성이 없다는 게 아니다. 중독성과 중독은 별개로 취급해야 하는데도 취약계층의 문제, 삭막한 입시경쟁과 척박한 놀이문화 등 근본적인 사회 문제를 게임 중독이라는 단어 하나에 그 책임을 과하게 덮어씌우고 있다. 그간 게임 중독에 대한 논의의 문제점과 게임 과몰입을 해소하기 위한 발전적 해법을 4회에 걸쳐 알아본다.



지난 6일 게임물등급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순형 의원(자유선진당)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왜 게임 `중독`이란 말을 안 쓰고 `과몰입`이란 표현을 쓰냐”며 호통을 친 것. 조 의원의 말을 해석하자면 게임도 엄연히 술, 마약과 같은 중독물인데 왜 과몰입이라는 말로 여론을 호도하느냐는 지적이었다. 조 의원의 지적은 타당할까.

인터넷, 게임에 `중독`이라는 표현을 너무 쉽게 쓰고 있다. 사실 중독은 매우 엄밀하게 쓰여야 하는 용어임에도 게임의 경우 약간의 과도한 이용만으로도 중독이라는 꼬리표를 예사롭게 남발한다. 물론 중독은 `영화 중독` `소설 중독`처럼 한 가지에 몰입하는 문화, 사회현상을 일반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꼭 부정적으로만 쓰이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독 `게임 중독` 만은 `폐인, 범죄, 패가망신` 등 부정적인 단어가 주홍글씨처럼 따라붙으면서 금기의 영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이번 정기국회에 상정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의 셧다운제나 문화부의 게임 규제는 아직도 이 같은 인식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음을 보여준다.

◇게임 중독, 실체 있나=중독이라는 말을 쉽게 쓰고 쉽게 재갈을 물리지만 정작 그 실체는 아직도 모호하다. 김주환 연세대 교수는 “인터넷이 모든 것이 된 상황에서 인터넷 중독의 개념 자체가 유지될 수 있는지 의문”이라며 “인터넷 중독을 기반으로 한 병리적 접근의 게임 중독 논의는 타당성이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의학적인 의미에서 중독은 주로 알코올이나 마약과 같은 물질에 의존해 계속 그 물질을 찾는 행동을 하고, 신체적 정신적 해를 입으면서까지 중단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한다. 흔히 듣는 `도박 중독` `쇼핑 중독` `인터넷 중독` 등은 의학적으로는 `충동 조절 장애`로 분류된다.

`게임 중독`이란 표현은 엄밀하게 정의된 용어가 아니다. 질병 분류의 기준이 되는 미국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DSM-Ⅳ)에는 인터넷 중독이나 게임 중독에 대한 독립 항목은 없고 2013년 개정판에 강박적 도박을 물질 남용과 같이 분류하는 것을 논의 중인 수준이다.

중독의 의미와 범주도 다 제각각이다. 누군가는 과도한 사용을 말하지만 혹자는 뇌 특정 부위의 이상에 의한 질병으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중독에 대한 최소한의 학문적, 사회적 합의는 찾아보기 어렵다.

◇게임 중독 냉정하게 봐야=게임이 중독을 일으킨다면 그 과정은 어떤지, `정상`과 `중독`의 범주는 어떻게 구분할지 명확하지 않은 것도 혼란을 가중시킨다. 기준이 없으니 게임 중독 논의도 자의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김현정 명지전문대 IWILL센터 팀장은 “청소년과 그 부모에게 인터넷 중독 척도 검사와 관찰자 척도 검사를 각각 실시하면 당사자는 정상으로 나오는데 부모 눈에는 고위험군으로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학업과 관련한 부모의 염려가 지나치게 반영된 결과”라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성균관대 산학협력단이 실시한 `게임 이용에 대한 인식 및 행동 진단 모델 연구`에서도 학부모는 자녀의 중독 가능성을 높게 추정했지만 실제로 `문제적 게임 이용 진단 척도`에서 `고위험군`이 아닌 비율은 16.3%로 나타났다. 게임에 대한 우려가 실제보다 크다는 의미다.

◇게임 `중독` 담론이 은폐하는 것=이처럼 사회적, 학문적 합의가 없음에도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나 국가정보화기본법 등은 `인터넷-게임 중독`이란 개념을 명문화하고 있다. `중독`을 중심으로 게임 논의를 풀어가면 결국 게임이 문제의 원인이므로 게임 행위 자체를 제한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다. 밤 12시 이후 청소년의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내용의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돼 있는 이유다.

하지만 이 같은 접근은 치열한 입시 경쟁과 열악한 놀이 문화, 사각 지대에 놓인 가정과 방치된 청소년 등 정작 근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를 도외시하는 우를 범하게 만든다. 장근영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박사는 “문제적 게임 이용은 가정과 환경의 여러 문제들이 모여 드러난 것이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며 “청소년 심리와 가정 환경, 변화하는 디지털 문화에 대한 이해 등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세희기자 hah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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