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다가 무릎을 탁 치며 깨달았어요. 아, 이건 정말 기록을 위한 책이구나!”
어느 기자의 단행본용 원고를 읽은 출판사 대표 A가 말했다. 그가 무릎을 치기까지 한 것은 그 글에 서린 `무엇인지 모를 안개 같은 게` 명확해졌기 때문. A는 “글이 너무 전문적”이라며 원고 첫 쪽에 `전체적으로 불친절한 책`이라는 쪽지를 붙였다.
기록하는 사람, 즉 기자(記者)가 쓰는 글. 뻣뻣하다. 사실에 곧바로 닿으려는 습성 때문이다. 기자가 쓰는 글의 특징 하나 더. 짜깁기가 많다. 사실을 알리는 글, 즉 기사(記事)로 썼거나 따로 취재해 뒀던 내용을 이리저리 묶어내고는 한다. 이런 행위를 두고 매우 강하게 비판하는 기자가 있는가 하면 “본디 하는 일이 그것(취재 · 기사작성)이고 아는 게 취재한 것밖에 없는데 짜깁기 말고 달리 뭘 더 할 수 있겠어?”라고 말하는 동료도 있다. 하긴 그렇기는 한데… 그 기록이라는 게, 특히 사실을 알리는 글을 다시 묶어낸다는 게 만만하지 않다. 비록 단순한 짜깁기라고 하더라도 여러 `사실` 조각을 제때 제 곳에 반듯하게 세우는 게 녹록하지 않은 까닭이다. 더구나 자기 이름을 걸고 쓰는데, 무책임하게 옛글(기사) 그대로를 마구 떼어 붙일 수 없으리라.
`IT 신화는 계속된다(2008년 10월 초판 1쇄)`를 지은이로부터 처음 받았을 때에는 `그냥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기사 짜깁기일 것`으로 생각했다. 목차를 쓱 살핀 뒤 어디에 뒀는지도 잊었다. 그런데 `기록의 힘`이 생각보다 커 책을 다시 펴게 됐다. 한국전기통신공사(지금은 KT)와 한국데이타통신(데이콤)이 탄생한 과정(95~116쪽)을 자세히 알아보기 위한 책 읽기였다. 이후 기록을 따라가다 보니 앞뒤로 읽는 쪽수가 늘었고, 급기야 일독했다.
읽다 보니 조각조각 눈에 밟히는 토막 여러 개! 2006년 옛 정보통신부가 세운 야심에 찬 정보통신기술 양성 계획인 `u-IT 839 전략`이 “시장의 실수요와 상관없이 신기술과 공급자 중심적이어서 효과가 미미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65쪽)”와 동기식 3세대(G) 이동통신(IMT-2000) 사업자로 선정됐던 LG텔레콤이 스스로 사업면허를 포기하면서 “한국 주도로 성장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이동통신서비스가 사실상 전 세계적으로 몰락하는 결과를 빚었다(66쪽)” 이 두 토막은 정부 관료가 탁자 위에 `산업 진흥론`을 올린 채 기업을 시장으로 꿰어낸 정책 철학의 실패 사례로 보였다. `비`동기식 IMT-2000 사업권 확보 의지가 누구보다 강했던(238쪽) LG텔레콤에 동기식 서비스를 떠안긴 게 정책 실패의 이유로 풀이됐다.
1990년대 한국 통신산업 발전사에 `성공 신화`로 기록된 CDMA 방식 이동통신을 채택했던 것도 매우 위험했다. 지은이도 “당시만 해도 미국 벤처기업 연구소에 불과했던 퀄컴의 기술 특허를 이용해 우리나라가 (이동전화)단말기와 (이동통신)시스템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모험(262쪽)”이었다고 보았다. 더구나 그때는 유럽형이동전화(GSM) 방식이 유럽과 중국 등에서 “CDMA 방식보다 더 큰 시장을 형성(283쪽)”했다. 억지 춘향으로 기업을 새 산업과 시장에 꿰어내는 정책은 이제 접어야 할 때다.
류현성 지음. 휴먼비즈니스 펴냄.
국제팀장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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