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빵`입니다

지난 14일 국회 산업기술연구회 산하 정부출연연구기관 국감장. 이날 국감장에선 ETRI 김흥남 원장의 `빵`이라는 짧은 답변이 관심을 끌었다.

모 의원이 여성과학자 채용인력에 대해 묻자 김 원장은 “수권 인력에 묶여 채용은 `빵`(제로)입니다”라고 답했던 것. 얼름장 같던 국감장의 긴장된 분위기를 풀어놓을 만큼 이 우스꽝스런 답변은 짧은 순간 웃음을 줬지만 묘한 여운을 남겼다.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김영환 위원장은 이 답변을 낸 김 원장에게 `빵 원장`이라고 우스게 소리를 던지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유학까지 다녀온 김 원장이 왜 굳이 `영`이나 `제로`라는 말대신 `빵`이라는 표현을 했을까에 대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아마도 김 원장은 정부의 인원동결방침 때문에 채용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심정을 `빵`이라는 한마디에 담아 대답했을 터였기 때문이다.

실제 이날 국회서 진행된 출연연 국감에선 정책질의 대신 매년 제기되던 질책성 질문들이 여지없이 쏟아졌다. 휴면특허와 기술료, 1인당 과제수, 과제참여율, PBS, 임직원 해외출장, 여성과학자비율, 장애인 채용, 해외박사취득자의 미귀국, 겸임겸직 등이 주요이슈가 됐다.

굳이 달라진 부분이라면 건설기술연구원과 생산기술연구원에 대한 4대강 질문이 주를 이뤘다는 정도다.

일부 의원들은 올해도 과학기술계에 대한 기본적 이해 없이 `무지와 오류`를 드러냈다.

올해 과제참여율이 0%인데 왜 연구수당이 지급됐느냐는 질문 등이 그렇다. 연구수당은 지난해 참여과제에 대해 지급한다. 또 PBS의 폐해로 인해 1인당 참여과제수가 점점 늘어나 월단위로 참여과제를 인건비에 맞춰 편성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파악하기 보다는 가장 윗단에 있는 기관장을 부도덕한 관리자로 매도하기에 급급했다.

겸임겸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겸임겸직자중 특허와 SCI급 논문을 안썼다고 파면시키라고 종용하는 의원의 질문을 들여다보면 출연연에 대한 이해와 지식은 거론하기 조차 해당기관에 미안할 정도다.

여성인력 채용률이 낮은 이유는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에 따라 기관 수권인력(실링:법이 정한 인력채용의 한도)때문인데도 기관장이 타깃이 됐다. 물론 과거에는 남성위주 채용기조가 한몫 했다. 그러나 최근와서는 이 같은 사정은 확연히 달라졌다.

모두가 과학기술계 및 정부출연연구기관에 대한 이해부족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지경위 소속 의원 24명 가운데 이공계 출신은 겨우 2명이다. 장관급을 들여다봐도 이공계 출신은 단 한명도 안보인다. 차관급 이상 관료에서도 겨우 2~3명만이 이공계 전공자다.

중국은 후진타오 국가수석(기계공학), 우방궈 전국인민대표회의 위원장(무선전자학), 원자바오 총리(지질광산학) 등이 모두 현장경험을 갖춘 이공계 기술관료 출신이다.

입법부는 법을 만드는 곳이다. 출연연에 어떤 어려운 점이 있고, 어떠한 사항이 R&D 발목을 잡고 있는지를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해외서 학위취득하고 귀국하지 않는 연구원 숫자를 따지기 보다는 과학기술인 연금에 기금을 대폭 확대해주는 입법이나, 수년째 동결되고 있는 출연연 임금 인상 특별법안, 과학기술인 세제혜택, 정년확대, 거버넌스 입법안 등을 마련하는 국회의원의 본연의 임무부터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전국취재팀장 박희범, hb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