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호모크리에이티브, 창의력이 국가 경쟁력 (3)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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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 과학탐험관인 엑스플로러토리움의 기하학 놀이터 전시물중 하나인 `공간을 채운 블록들`. 기하학을 온몸을 이용해 놀면서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했다.

전 세계 각국이 창의인재 확보 전쟁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이고, 대표 정책이 2007년 `미국의 과학기술 공학 및 수학교육시스템의 주요 요구사항에 관한 국가 행동 전략`이다.

그렇다면 미국 공교육은 창의인재 육성에 적합하게 돌아가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당수 지역과 학교에서 `그렇지 않다`. 문제점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교사 1인이 담당하고 있는 학생 수가 너무 많고, 학생 간 실력 차도 커 교사들에게는 창의 인재 육성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예산도 넉넉지 않아, 학교와 학생들이 원하는 시설과 시스템이 부족하다.

하지만 미국 각계에서는 창의 인재 육성에 대한 필요성을 강하게 인식하고 있다. 미국의 미래가 창의 인재에 달려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다. 그래서 다양한 노력을 전개 중이다. 과학관에서는 학생, 교사 그리고 일반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들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자극한다. 공교육 현장에서도 대안교육 프로그램 가동에 들어갔다. 기업들도 나서서 창의인재 육성을 위한 다양한 대안교육프로그램을 기획했다.

과학관의 대표 사례로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과학탐험관인 `익스플로러토리엄(exploratorium)`을 빼 놓을 수 없다. 8월 말부터 익스플로러토리엄은 `기하학 놀이터(Geometry Playground)`라는 창의력 향상 프로그램을 마련해 운영 중이다. 과학탐험관 10여명의 전문 인력들이 4년간 기획해 최근 공개한 프로그램으로 앞으로 1~2년 추가적인 개선을 포함 총 300만달러의 예산을 투입했다.

기하학 놀이터를 본 순간, 오랜 기획기간과 막대한 예산에 비교해서는 너무나 평범하고 초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뭔가 거창하면서도 대단한 스케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표적인 작품이 `공간을 채운 블록들(Space-Filling Blocks)`이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블록들이 쌓여 있는 곳에 어린이들은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특징이 있다면 바로 앞에 어린이들이 놀고 있는 블록들과 동일한 모양과 색깔의 미니어처(극소형) 블록들이 전시돼 있다는 점. 어린이들이 대형 블록에서 뛰어 놀고 이후 미니어처 블록들을 만지면서 공간 개념을 이해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온몸을 사용해 뛰어놀던 곳을 손으로 만지면서 공간이 어떻게 채워져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느끼도록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곳에 주류를 이루고 있는 유치원 또는 초중등학생들이 이런 기하학 개념을 바로 이해할 수는 없다. 과학탐험관에서는 이는 공교육의 몫이라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느꼈던 것을 기하학 시간에 이론으로 익히면서 잠재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한다는 것. 초등학교에 다니는 3명의 아들 · 딸과 현장을 찾은 학부모 체이스씨는 “기하학은 고등학교에서 배우기 때문에 아이들이 오늘 뛰어놀고 얼마나 기하학을 이해할지는 모르겠다”며 “단지 아이들이 놀면서 과학관에 이런 시설이 왜 있는지 궁금함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기하학에 대해 부분적으로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설들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연구를 통해 개발됐다는 점이다. 자체 연구원들이 다양한 실습을 통해 시설물을 직접 만든다. 초점은 어린이들이 과학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게 하는 것. 이를 위해 수도 없는 테스트 과정을 거친다. 부모의 동의 하에 어린이들이 직접 실습하는 모습을 관찰한다. 어린이들이 전시물을 만지면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심리 · 행동 전문가들이 각 반응에 대해 평가하고 이에 따라 전시물과 프로그램을 만든다. 토이 단쿠 익스플로러토리엄 연구원은 “어떤 현상에 대한 학생의 반응을 광의적 그리고 협의적으로 분류해 이들이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연구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전시물을 완성한다”고 소개했다. 엑스플로러토리움은 이 시설을 다른 지역 과학관에도 전시해 지속적으로 개선하게 되며, 시설을 직접 제작 판매도 할 예정이다.

공교육의 창의인재 양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일부 학교를 중심으로 실습 위주의 창의인재 육성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에 위치한 걸스미들스쿨(GMS)은 현장 프로젝트 기반의 학습으로 여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현장을 찾고 그 정보를 학교에서 분석한다.

리사 헬름 GMS 과학 교사 겸 연구원은 “학생들은 과학 현상에 대해 현장에서 최신 장비와 기술을 이용해 수집하고, 이후 스탠퍼드대학 졸업생 등을 멘토로 함께 연구를 한다”며 “이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이 배우는 것을 쉽고 편하게 이해해 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뜨겁다. 아만다는 “야외 학습은 교실에서 책을 읽는 것보다 더 흥미롭다. 날씨처럼 실생활의 다양함을 다룰 수 있어서 좋다”고 말했으며, 미란다는 “학교에서의 수업은 단지 `과학과목`에 불과하지만 우리가 외부로 나오면 `과학현장`에 있는 것”이라고 흡족해했다.

헬름 교사는 “현장 프로젝트 기반의 교육은 학생들이 복잡한 문제에 닥쳤을 때 그 해결책을 찾도록 돕는다”며 “교육을 통해 정답을 찾기보다는 올바른 질문을 하도록 하는 것이 의미가 크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의 창의 인재 양성을 위한 노력도 빼 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곳이 인텔이다. 인텔은 교사들이 새롭게 등장하는 다양한 기술들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도록 돕는 `테크프로그램`과 초등학교 교사들이 수학개념을 더 쉽게 가르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수학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교육현장의 혁신을 위해 교사와 학생을 위한 자료와 설비를 지원하고, 인텔국제과학엔지니어페어 · 인텔사이언스탤런트경진대회 그리고 여러 로봇경진대회를 운영하거나 협찬한다.

인텔의 교육을 총괄하는 페이지 존슨 K-12(정규학습과정) 매니저는 “학생들이 직접 체험하는 프로젝트를 기반으로 학습해 이해하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모든 학생들이 21세기 정보경제하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데 도와준다”고 말했다.

인텔 측은 그들의 프로그램을 통해 교사들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해 효율적으로 수업을 하게 됐다고 평가했다.

미국에서 학부모들의 공교육에 대한 불신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현지의 한 학부모는 “교육부문 예산 부족으로 학교에서의 교육의 질이 날로 떨어지고 있다”며 “하지만 학생과 학부모가 관심을 갖는다면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만큼 공교육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각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미국의 힘이고 저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현지인들의 평가다.

샌프란시스코(미국)=



<인터뷰: 톰 락웰 엑스플로러토리움 전시 감독>

“학교 교육은 시간과 예산 모두가 제한돼 있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호기심을 자극해 많은 것을 자발적으로 배우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톰 락웰 익스플로러토리엄 전시담당 감독은 창의인재 양성을 위한 과학관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가장 훌륭한 교육은 교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학생 스스로가 호기심을 갖고 익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얼음에 소금을 뿌리면 빠르게 녹습니다. 이 이론을 단순히 설명해서는 학생들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학생 스스로 얼음에 소금을 뿌려 녹고, 이게 왜 녹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학생 입에서 나온 후 이론을 설명한다면 교육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시간 그리고 재정적 한계로 학교에서는 모든 학생들에게 이론을 이해하기 위한 실습을 하지 못해, 그 공백을 익스플로러토리엄에서 담당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캘리포니아 등 미국 여러 주에서는 공교육에 대한 불만으로 학부모와 지역단체들이 공동으로 차터스쿨(charter school)을 세우고 있다. 차터스쿨은 공적 자금으로 운영되는 사립학교로 학부모들이 교사를 직접 선정하고 커리큘럼을 짜서 주정부에 예산을 신청하면, 강사비 · 교재비 등을 지원받아 운영한다. 단순 이론식 교육이 아니라 공작 · 실험 · 탐험 등 실습 위주로 진행된다.

이 같은 학교 이외의 학습은 앞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락웰 감독은 예상했다.

“앞으로 학교 정규 교육과 비정규 교육이 함께 융합돼 발전할 것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과학관에서 실습한 내용을 학교에서 이론으로 익히는 형태가 좋은 사례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그럴 수 있도록 호기심을 자극하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학교를 졸업한 일반인도 궁금증을 자아내, 직접 연구를 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게 우리의 교육철학입니다.”

이를 위해 철저한 프로그램 기획 과정을 거친다.

락웰 감독은 “우리의 프로그램 기획자들은 예술가겸 과학자”라며 “단순히 박물관이 아니라 연구를 하는 곳으로 어떻게 하면 관람객들이 어떤 과학 현상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학습하고자 하는지를 연구하고 개발한다”고 말했다.

창의인재 양성을 위한 과학관과 같은 비정규 교육기관의 효과에 대해서도 확신했다.

“측정 방법에 따라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인 호기심을 자아내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결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락웰 감독은 교육 이외의 기관에서의 창의인재 양성을 위한 대안교육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말했다. 이곳에서의 실습으로 과학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쉽고 재밌다`는 것을 깨닫고 이는 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안교육이 확대될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이를 위해 “앞으로 더 많은 교사들이 양성돼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창의적 인재는 더 많이 창출될 것”이라고 락웰 감독은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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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S 학생들이 실습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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