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은 교육분야에서 극히 위험한 길을 걷고 있다. 창의적이고 유연한 교육의 길 대신 주입식 암기교육에 극단적으로 가치를 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상력 발전소`라 불리는 MIT 미디어랩의 창시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가 1995년 한국 교육계에 던진 충고다. 그 후 15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의 교육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암기식 · 주입식 교육 중심의 일선 학교는 좀처럼 변할 줄 모른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정부와 학계, 산업계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가능성을 조금씩 보여주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창의 교육에 목마른 한국학생, 현실은…=지난 8월 3일 개막한 대한민국과학축전에서 국제 연계 행사의 일환으로 마련된 프랑스의 과학체험 교육프로그램 `라망 알라파트`에는 유난히 많은 학생이 모여 성시를 이뤘다. 라망 알라파트는 정해진 매뉴얼에 따른 실험이 아닌, 학생이 직접 가설을 세우고 직접 실험을 설계해 이에 대한 검증 과정을 고안해내는 과학교육 방법이다. 이날 긴 줄을 서서 기다리던 이훈(장성중학교 1년)군은 “이제껏 학교에서 했던 실험보다 훨씬 재미있고 더 몰입하게 된다”며 즐거워했다.
또 `공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생각`이라는 슬로건으로 과학기술과 인문학 · 예술 등을 융합한 강의와 업계 대표 CEO 및 석학들이 경험담을 들려주는 비영리 콘퍼런스 `테드엑스(TEDx)`의 열기가 대학가에 뜨겁다. 올해 연세대 · 홍익대 · KAIST · 숙명여대와 대학로 · 명동 등 주요 대학 및 젊음의 거리에서 열린 테드엑스에는 매번 수백명의 대학생이 모여 18분짜리 명강의에 귀를 기울인다. 콘퍼런스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한 학기의 강의에서도 느낄 수 없었던 `18분의 감동`”이라고 표현했다.
이처럼 우리나라 학생들은 학년을 막론하고 새로운 교육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학교에선 여전히 `국 · 영 · 수` 중심의 주입식 교육을 주된 커리큘럼으로 유지하고 있다. 다름 아닌 대학 입시 때문이다. 다양한 실험 및 알고리듬 설계로 학생들의 창의성을 일깨울 수 있는 물리 · 화학 등 이공계 과목이나 컴퓨터 교과목이 일개 선택과목으로 배정되는 등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8월 발표된 2014년도 수능체제 개편시안(현 중학교 3학년부터 적용)은 학생의 부담을 던다는 취지로 과목 수를 줄였다. 하지만 국 · 영 · 수는 외려 강화하고 과학 등이 포함된 선택과목 비중을 대폭 축소한데다 컴퓨터 관련 과목은 아예 선택과목에서 제외됐다. 대학 입시만 바라보고 교육하는 한국 사회에서 대입에 반영되지 못한 것은 곧 해당 과목에 대한 전체적인 교육 공급과 수요를 동시에 떨어뜨린다는 우려를 낳는다. 실제로 정부의 학교 자율화 · 다양화 기조는 보다 다양하고 창의적인 교육과정 도입을 위한 것이지만 일선 학교에선 자율권을 이용해 국 · 영 · 수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김문중 전국컴퓨터교육협의회장은 “창의적 정보영재 양성은 이제 민간 IT 교육기관뿐만 아니라 정부의 교육개혁 의제의 중요한 과제로 인식하고 지원해야 한다”며 “지금처럼 학교에서는 입시공부에 밀려서 외면당하는 과목이면서도 민간 교육 분야에서는 입시 사교육으로 치부되어 정부정책에서 홀대받는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시작되는 창의교육=교육과학기술부는 지난 1월, `창의 · 인성교육 기본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다. 방안에는 유아 단계에서부터 초중등 · 대학에 이르기까지 창의적 인재 양성을 위한 로드맵을 담고 있다.
유아 단계에선 유치원 교육과정을 기본과정과 종일과정으로 이원화해 기초인성 확립과 함께 체험 · 놀이 중심의 교육과정으로 편성, 운영한다. 이어서 초 · 중등 단계에선 교과별로 담당할 창의 · 인성교육 내용을 구체화해 토론 · 탐구 · 글쓰기 등 `어떻게 학습하는가`를 중심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또 대입시 입학사정관 전형을 확대해 일률적인 교과목 성적 외 학생의 창의성을 비중 있게 평가한다는 기조다.
이에 대해 일단은 긍정적인 반응이다. 입시 위주의 천편일률적 교육 시스템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소재의 한 사립고등학교 교사는 “다양한 창의 교육 프로그램 도입 시 입시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일부 학부모의 반대가 있었지만 정부 정책이어서 힘을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교과부는 또 2011년부터 시행되는 `이공계 인력 · 육성지원 기본계획` 2차 시행계획에 `학교로 가는 생활과학교실`을 올해 1150개에서 2015년 1400개로 늘리는 등 학생들이 직접 체험을 통해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을 조성을 명시했다.
또 2015년까지 R&D서비스 전문인력 1400명 양성과 이공계 미취업자 2만 여명 대상 연수교육 및 취업을 지원하는 등 미래창조형 일자리 창출에도 적극 나선다.
한편 체계적인 창의교육 정보인프라 구축에도 나섰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지역사회를 비롯해 전국의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과 시설, 인적자원을 총망라해 학교가 창의 교육에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모아 놓은 `창의체험자원지도`를 구축한다. 이를 웹사이트 `크레존(www.crezone.net)`에서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서비스할 계획이다.
또 전국 각지에서 우수한 창의적 교육을 펼치는 일선 학교의 사례를 수집해 널리 보급한다.
강호영 한국과학창의재단 창의인재기획실장은 “하반기 내 우수 학교 사례를 모아 다른 학교에서도 참고할 수 있도록 계획을 수립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부의 시도가 지금까지의 교육 체계에 `창의`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불어넣을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효성에 대한 지적도 있다. 대입과 직접 관련되지 않으면 대학 간판을 위해 모든 교육 역량을 쏟아 붓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입이 없어지든지, 대입에 창의교육 평가가 전격 도입되든지 둘 중의 하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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