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중국 LCD 투자 승인, 당당

국내 기업의 중국 진출 역사는 그다지 길지 않다. 우리나라와 중국 간 정식 수교가 지난 1992년에야 맺어졌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홍콩 등을 통한 3자 무역형태에 만족해야 했다.

문이 열리자 국내 기업들의 중국 진출은 러시를 이뤘다. 삼성전자가 지난 1992년 톈진법인을 설립했으며 LG전자는 이듬해 후이저우 법인을 시작으로 투자를 진행했다. 1982년부터 중국에 진출한 코카콜라 등 다른 다국적 기업과는 10년 가까운 시차가 존재한다. 그러나 투자는 어느 다국적 기업보다도 빨랐다.

삼성그룹은 삼성전자를 포함해 삼성SDI · 삼성전기 · 삼성SDS · 삼성화재 · 삼성증권 · 삼성물산 · 삼성중공업 등 대다수 계열사들이 중국에 둥지를 틀었다. 지주회사 격인 중국삼성은 총 39개의 생산법인과 34개의 판매법인, 6개의 연구소를 두고 총 7만 여명의 현지인을 고용한다. 중국삼성이 지난해 올린 매출은 418억달러(약 50조원)로 삼성그룹 전체 매출인 220조원의 4분의 1에 달한다. LG그룹 역시 중국에 공을 들이고 있다. LG전자 · LG디스플레이 · LG이노텍 · LG화학 · LG CNS 등 주요 계열사가 속속 중국에 진출, 제품 생산과 판매, R&D 등을 진행해왔다. 지난해 LG그룹 중국법인들이 올린 매출은 270억달러(32조원)로 전체 그룹 매출의 3분의 1 정도를 이곳에서 담당한다. 중국 종업원 수도 6만명에 이른다.

삼성과 LG에게 이제 중국은 제2의 본사다. 지난 2003년 중국에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이 유행할때도 삼성과 LG는 직원들을 철수시킨 다른 다국적 기업과 달리 현장을 지켰다. 중국인들에게 파고들기 위해서는 함께 고통을 나눠야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하지만 행정은 문제다. 삼성전자 · LG디스플레이가 지난 2월 중국 정부에 LCD 팹 공장을 짓겠다고 승인을 요청했지만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을 못듣고 있다.

일부에서는 투자 승인을 요청한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만 · 일본 등 3개국과의 정치적인 조정 때문에 연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11년 말과 2012년 초에 8세대 공장을 가동하는 현지 중국업체들에게 시간을 벌어주기 위한 조치라는 시각도 있다. 더 많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한 중국 정부의 전략이라는 얘기도 돈다. 이번 건이 주목받는 것은 중국 정부의 해외 투자전략에 대한 태도다. 입맛에 맞는 기업만 중국행을 허락하겠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

조선시대 3대 거상 중에 한 명이 임상옥이다. TV드라마로도 방영된 임상옥 일대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청나라 상인들이 비싼 가격을 빌미로 인삼 불매운동을 벌였을 때다.

임상옥은 청나라 상인들의 바람과 달리 인삼 가격을 더 올렸다.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급기야 인삼을 불태웠다. 청나라 상인들은 임상옥을 말렸고 임상옥의 뜻대로 우리나라 인삼은 제 값을 받게 됐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국내 기업들은 진정성을 담은 투자계획을 제출했다. 이제는 당당함을 보일때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