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 사전예약

휴대폰이 우리 일상을 바꿨다. 안부를 묻는 것에서 벗어나 길을 묻고 세상과 소통하는 창으로 변신했다. 휴대폰 속에는 사전 예약된 수많은 약속들이 존재한다. 굳이 다이어리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 예약된 전화번호는 이름만 치면 튀어나온다.

노래방이 생기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래를 잘 부르게 됐다. 웬만한 음치는 노래방을 통해 거의 교정됐다. 내가 부를 노래를 위해 노랫말을 외울 필요도 없다. 사전예약 버튼을 누르면 화면위로 가사가 줄줄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노래방 기계가 없는 곳에서 노래를 할라치면 애창곡일지라도 노랫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하나가 더 있다. 내비게이션이 등장하면서 운전이 참 쉬워졌다. 목적지를 예약하면 쉽고 빠르게 데려다 준다. 운전자는 내비게이션 지시에 따라 페달만 밟으면 된다. 그러나 예약된 길 안내는 운전자들의 머릿속에 있던 `빠른 길`을 지워 버렸다.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운전을 할 수 없는 `길치`가 늘었다.

국내에서 애플 아이폰4 사전예약이 시작됐다. 신청자가 폭주하면서 온라인예약 1시간 만에 사이트가 한때 접속장애를 겪기도 했다. 4시간 만에 7만대를 훌쩍 넘겼다. 아이폰은 온 · 오프라인 모두 줄을 서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이미지로 굳어졌다. 값비싼 명품이 아니더라도 특별하게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사전예약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의 `문화코드`가 됐다. 그래서 사전예약은 설렘이 있다. 까닭모를 불안감과 막연한 기대가 혼재해 있다. `될까 안 될까` 걱정을 쫓으면 설렘이, 설렘을 지우면 걱정이 마음을 짓누른다. 고객과의 약속을 사소한 개인일로 넘겨버리는 몰염치도 있지만 그래도 사전예약은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다.

포도주 애호가들은 해마다 11월을 예약한다. 햇포도로 만든 보졸레누보의 병뚜껑이 셋째주 목요일 `0시`에 열리기 때문이다. 해외로 여름휴가를 가기 위해 예약했거나 다가올 추석승차권을 예약한 사람들 역시 그때가 오기를 설레며 기다린다.



김동석기자 ds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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