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원에 붙었다고 할까. 이민간다고 할까. 다른 회사에 입사하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미안하고 거짓말로 둘러대기도 입이 간지럽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퇴사하면 죽여버리겠다던 윗분들께 퇴사계획을 알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멋 모르고 퇴사일을 일찍 알렸다가 퇴사날까지 죄인 취급 받았던 선배들의 역사를 새로 쓸 자신이 없다. 내가 없으면 당장 힘들어질 회사, 뻔히 알면서 등 돌리기가 미안하고 입이 안 떨어진다. 마음 같아선 소리소문 없이 잠수라도 타고 싶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 나 없이도 굴러갈 회사는 굴러간다.
톱니바퀴 한 개가 세상을 느리게 할지는 몰라도 멈추게 하지는 않는다. 어차피 직장생활이라는 게 들어오고 나가는 게 당연한 현상이라면 업무인수인계 잘하고 일목요연하게 하던 일을 잘 정리해 놓는 것으로 아름다운 뒷모습을 남기자. 다만, 직속상사에게 먼저 얘기해야지 어설프게 소문이 나거나 동료를 통해 정보가 흘러들어가면 일이 와전될 수 있다. 술병에서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술이지 병이 아니다. 병이 아무리 좋아도 그 안에 물감 탄 물이 들어있으면 장식용 이상이 아니다. 마음이 떠났는데 몸만 붙어있으면 장식용만도 못하다. 발뺄 궁리를 하면서 시간 때우고 있는 것보다, 결심한 그날 얘기하고 내 빈자리를 잘 메워 줄 방도를 찾는 데 주력하자. 그것이 진정한 의리다. 윗분들 입장에서야 키운 만큼 열매를 거두고 싶어서 `퇴사하면 죽인다`고 말했겠지만 그것을 사실로 옮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미안하면 노여워하지 말자. 죄인 취급 받는 것은 당연하다. 입사 2년차까지는 일을 하러 회사에 나온 게 아니라 배우러 회사에 나온 것이고 월급 값어치를 했기보다 월급을 축낸 시기였다. 그 시기를 되갚지 못한 채 부득이 퇴사하게 되었으니 죄인은 죄인이다. 부채감을 갖고 감사하자. 각오하면 생각보다 쉬워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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