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뉴 노멀 시대의 올드 노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할까. 지난 5월말, 정보기술(IT) 업계 제왕 마이크로소프트(MS)는 애플에 왕좌를 내줬다. 애플이 시가총액을 앞질렀다. 올 3분기에는 매출 역전도 확실시 된다.

애플이 왕좌에 오른 것은 ‘디지털 뉴 노멀(new normal)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미국 벤처캐피털리스트 로저 맥나미가 지난 2005년 펴낸 저서 ‘뉴 노멀’이 5년 만에 현실화한 셈이다. 새로운 기준을 의미하는 ‘뉴 노멀’은 기존 시장질서인 ‘올드 노멀(old normal)’을 빠르게 갈아치운다. 애플의 MS 추월도 단순한 기업순위의 변동을 뜻하지 않는다. 디지털 생태계의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PC 중심에서 모바일기기로, 유선에서 무선으로 새로운 질서는 이미 재편되고 있다.

글로벌 경제 역시 지난해 금융위기 이후 뉴 노멀 트렌드가 뚜렷하다. 소비자들은 저렴하면서 품질이 좋은 ‘스마트 소비’를 선호한다. 매출 중심의 경쟁을 벌여온 기업들도 이젠 이익 경쟁에 한창이다. 선진국이 아닌 신흥시장으로 빠르게 눈을 돌리는 것도 새로운 변화다.

로저 맥나미는 그의 저서에서 “뉴 노멀이 지배하는 미래는 예전에는 한 번도 관심을 주지 않았던 곳에 무한한 기회가 있는 시대”라고 예견했다. 새로운 시장질서에 빠르게 적응하면 제2, 제3의 애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에 올드 노멀에 안주한 기업들은 순식간에 낙오자가 된다. 우리는 이미 1990년대 말 닷컴열풍 속에서 이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하지만 여전히 ‘올드 노멀’이 건재한 곳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법과 제도다. 시장, 기술, 기업, 소비자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데 우리의 법과 제도는 10년전, 20년전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국회는 너무나 한가하다.

최근 게임사전등급제 때문에 애플과 구글이 ‘게임 앱스토어’를 한국에 서비스 못 한 것은 단적인 사례다. 아이폰을 판매하는 94개 국가 중에서 앱스토어에 게임 카테고리가 없는 나라는 한국, 브라질, 콜롬비아 3개국뿐이다. 게임업계엔 온라인 게임강국의 명성이 모바일 시대에 저물게 됐다는 탄식이 쏟아진다. 1980년대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 규제의 망령이 뉴 노멀 시대 발목을 잡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와 국토해양부가 신경전을 벌이는 ‘u시티 자가통신망 연계 허용’ 논쟁도 마찬가지다. 2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면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u시티 산업은 여전히 게걸음이다.

국회에서는 ‘올드 노멀’에 ‘뉴 노멀’이 뒷전으로 밀리기도 한다. 해묵은 ‘집시법’ 개정 논쟁으로 민생 법안인 ‘개인정보보호법’은 논의조차 되지 못한다. 지금 국민들은 야간 집회보다 개인정보 유출로 피싱 사기를 당할까 더욱 걱정하는데도 국회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발목을 잡는다면 차라리 없는 게 낫다.

사실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시대엔 새로운 제도조차 금방 낡은 규제가 된다. 규제는 최소화하고 민간자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야 한다. 뉴 노멀시대엔 똑똑한 소비자들이 비양심적인 기업을 심판할 수 있는 자정능력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생각보다 훨씬 더 똑똑하다. 누가 뉴 노멀인지, 누가 올드 노멀인지 다 안다.

장지영 컨버전스팀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