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역사가 평가할 것입니다

고 노무현 전(前) 대통령은 2007년 12월 27일 밤, 청와대 출입기자단(춘추관 출입기자)과의 마지막 송년회에서 재임기간을 돌이키 보며 어렵게 ‘역사’라는 말을 꺼냈다. 이야기 요점은 이렇다.

‘대통령 취임 후 많은 사람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고 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라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고 싶었으나 탄핵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6개월이 지나자 많은 사람이 ‘성공한 대통령이 되라’는 말보다는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며 돌려 말하더라는 내용이다.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은 이미 현직 대통령으로 성공한 대통령, 좋은 대통령이 되기보다 ‘나중에 당신의 뜻을 역사가 좋게 평가할 것’이라는 일종의 덕담이었다. 이 말은 ‘오프더레코드(비보도)’를 전제로 했던 말이지만 한동안 화제가 됐다. 역사는 무엇을 기록하고, 어떤 것에 의미를 둘 것인지, 누구에 의해 기록될 것인지를 두고 고민할 만 했다.

역사는 ‘지나간 시간에 일어난 일’을 뜻한다. 대통령의 입에서 ‘역사’라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이제 지나간 대통령, 지나간 시간에 일어난 일들을 주도했던 인물이 됐음을 의미한다. 이제 역사를 만드는 주체가 아니라 평가를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서 ‘현역으로부터의 퇴임’을 말한다.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아직 정착되지 않았다. 평등, 분권, 참여라는 정치적 개념은 물론이고 ‘IT839’라는 산업정책에 대해서도 그렇다.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보다 그렇지 못한 비판도 꽤 많다. 특히 지금의 정권에서는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할 만큼 혹독한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는 그 사건을 만든 당사자에 의해 적혀가는 게 아니라 그 역사를 경험했던 국민과 그리고 후세의 판단에 따라 달라진다. 그래서 역사는 ‘자화자찬’용 자서전과 다르다. 역사는 냉정하다. 특히 ‘성공한’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더욱 차갑다. 대통령의 곁에는 그를 비판하는 정적(政敵)들이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만들어진 시점과 평가하는 시점이 다르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하다. 고 노무현의 ‘성공한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평가는 아이러니하게도 정적이자 후임인 이명박 정부의 몫이다. 그리고 국민들의 몫이다.

이명박 대통령 임기도 반환점을 돌고 있다. 7월 25일 현재 944일 가량이 남았다. 남은 944일을 위해 청와대 조직개편도 마쳤다. 이 대통령은 호흡을 가다듬고 후반기 국정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한동안 이명박 대통령의 정부 조직법 개편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왜 세계 최강의 통신 강국을 이끌어온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미래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과기부를 교육부와 통합시켰을까’가 고민의 핵심이었다. 지금도 이해하기 힘들다. 그래서 ‘역사가 평가할 것’이란 말로 미루고 한동안 접어뒀다.

944일 뒤 이명박 대통령도 ‘역사’가 된다. MB 역시 역사를 만든 사람에서 역사 그 자체가 되는 순간 후임 대통령에 의해 재평가된다. 작게는 정통부 해체와 과기부 통합부터 4대강, 녹색성장, 외교, 대북관계 등 모든 게 평가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잔인한 것은 그를 평가할 후임대통령 역시 MB를 비판하고 당선된 ‘정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역사가 평가한다’는 말은 참 냉정한 말이다.

김상용 취재총괄부국장 srki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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