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영걸 KAIST 정보미디어경영대학원장은 기존에 구축된 고객관계관리(CRM) 시스템과 프로젝트가 진실로 고객과의 관계를 향상시키고 관리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단기적 매출 상승의 툴로서 임원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 실패 원인이라는 것이다. 김영걸 교수는 “CRM은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실무자가 사용하는 것이고, 고객이 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와 선호도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했을 때 결과적으로 매출이 향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객관계관리(CRM) 프로젝트의 성공률이 낮은 이유는.
▲국내에서 70% 이상의 CRM 프로젝트가 실패했다고 본다. 첫번째 이유는 고객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타깃 마케팅으로 단기적 매출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고객에게 스팸성 전화를 자주 거는 등 일방적인 접근으로 인해 고객과 관계가 더욱 악화되곤 한다. 두번째는 CRM 시스템은 있지만 추진 조직과 전략이 없는 경우가 많다. 조직 구성원의 생각부터 바꿔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 아무리 좋은 시스템을 갖춰도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B2B 기업들의 경우 영업 담당자들이 고객 관리를 위해 사용하는 CRM 시스템이 아니라 영업 담당자를 관리하기 위한 CRM을 구축하기도 한다. 실패의 지름길이다. 불행하게도 많은 시스템이 실무진이 아닌 임원의 눈높이로 설계돼 있다.
-관계 형성에 중점을 둔 좋은 사례가 있나.
▲각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분석해 로그인 할 때마다 다른 책을 추천하는 아마존, 온라인을 활용해 담배 사용자 기호를 파악하는 말보로 등이 좋은 사례다. 델은 스스로를 PC 판매회사가 아니라 고객을 위한 ‘PC 관련문제 해결부서’라고 부른다. 구글은 각 개인의 위치 정보를 분석해서 잠재고객을 파악하기도 한다. 또 국내에서는 민들레영토와 에버랜드도 고객 중심 조직 문화와 감성 전달로 별다른 시스템 없이 고객과의 관계 형성을 통해 성과를 얻은 기업들이다. 매일유업도 관계 형성을 위한 CRM을 잘 추진하고 있는 사례다.
-CRM 평가지표로 넷프로모션스코어(NPS) 지수를 추천했는데.
▲일반적인 ‘고객만족도’ 조사는 대부분 80~90% 이상의 만족도가 나온다. 정확한 판단이 힘들다. 예를 들어 ‘주변에 이 제품을 추천하겠느냐’는 질문을 하고 1~10까지 숫자를 기입하게 한 후 9~10을 체크한 사람 수에서 1~2를 체크한 사람 수를 마이너스한 수치가 NPS 지수다. 많은 기업들이 이 조사를 한 후 고객만족도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평소 고객만족도가 90%를 넘는 한 글로벌 명품기업도 최근 NPS 조사 결과 -50%라는 점수를 얻었다.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이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제품군별로 조사하면 경쟁력에 대한 결과가 정확히 나온다.
-CRM 프로젝트를 위해 조언한다면.
▲정보시스템을 우선시하기보다 감성을 전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세스와 추진체계, 조직문화 형성에 집중해야 한다. CRM의 성과를 개인의 핵심성과지표(KPI)에 반영하는 등 평가체계도 중요하다. 정반대로 가고 있는 기업들이 통신기업들이다. 서로 가입자 빼앗기 경쟁을 벌이다 보니 기존 고객과 관계형성보다 경쟁사 고객 유치에 더 집중하고 있다. 고객들이 기기를 바꿀 때마다 통신사를 바꾸는 기현상으로 이어지면서 CRM의 핵심가치를 잃어버린 경우다. 엄청난 양의 DB나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해서 CRM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