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 생태계에서 친환경 연료를 뽑아내는 신종 에너지 산업이 주목받고 있다. 늦어도 10년 내 바닷가에 지천으로 널린 우뭇가사리나 해수 속의 미세조류에서 추출한 연료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도 띄울 날이 온다. 지표면의 70%를 차지하는 바다 전체가 영원히 마르지 않는 유전 역할을 한다면 지금 인류가 걱정하는 ‘석유 이후의 시대’도 그리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다.
지난달 26일 전라남도 고흥군에서는 국내 최초로 해양 바이오연료를 생산하는 파일럿 플랜트의 기공식이 열렸다.
이곳에선 홍조류인 우뭇가사리를 급속발효시켜 단 48시간 만에 바이오 알코올을 하루 4000리터씩 제조하는 생산공정을 2012년부터 시험가동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은 홍조류를 이용한 알코올 생산의 경제성을 검증하고 100배 규모인 대규모 상용 플랜트(하루 40만리터)의 기본설계와 상세 엔지니어링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다.
해외에선 지방성분이 많은 녹조류를 배양해 바이오디젤을 추출하는 연구에 주력하는데 특이하게도 우리나라는 당분이 많은 홍조류를 발효시켜 알코올을 뽑아내는 원천기술을 자체 개발하고 실용화도 가장 앞선 상황이다.
총사업비 150억원이 투입되는 이번 사업은 바이올시스템즈가 주도하며 현대자동차, 태양중공업 등도 참여기관으로 합류한 상황이다.
생산공정은 다음과 같다. 우선 홍조류를 씻고 압착, 탈수과정을 거쳐서 바싹 건조시킨다. 말린 우뭇가사리를 분쇄하고 당화, 발효, 증류과정을 거치면 술에 들어가는 에틸 알코올(에탄올)이 남는다. 소주공장에서 곡류로 술을 만드는 과정과 거의 동일하다. 우리나라는 홍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생산 효율을 높이는 특허기술을 갖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한국은 바닷속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우뭇가사리를 활용하는 바이오 에탄올 플랜트를 전 세계에 독점공급하고 친환경 에너지 기술강국으로 도약하게 된다. 세계 각국이 유가상승에 대응해 옥수수, 사탕수수 등 천연재료를 이용한 알코올 생산에 매달리고 있다. 바이올시스템즈는 홍조류를 이용한 에탄올 제조기술로 세계 바이오 에탄올 시장의 10%를 점유해 수조원대 매출을 올린다는 계획이다.
알코올을 만드는 주원료인 우뭇가사리는 옥수수, 사탕수수와 같은 육상식물에 비해 성장속도가 월등히 빨라 연 4∼6모작의 대규모 양식도 가능하다. CO2 포집량이 곡물에 비해 3∼7배에 달하고 바닷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반도국가인 우리나라에는 매우 이상적인 바이오연료 공급원이다.
바닷물 속에서 자라는 미세한 녹조류에서 기름(바이오디젤)을 뽑아내는 친환경 에너지 시장 경쟁도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녹조류를 이용한 바이오디젤 개발에 뛰어든 가운데 9일 전라북도는 녹색성장포럼을 개최하고 새만금에서 자라는 녹조류에서 바이오연료를 추출하는 에너지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녹조류가 바이오연료 공급원으로 관심을 끄는 것은 지구상에서 성장속도가 가장 빠른 생물체기 때문이다.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만 있으면 어디서나 잘 자라고 한 달이면 수확이 가능하다. 단위면적당 생산성이 여타 식용작물보다 최고 100배나 높다. 게다가 녹조류에는 최대 40∼50%의 유성물질이 포함돼 있다.
특별히 기름진 성분의 녹조류를 배양액에 넣고 햇볕이 잘드는 곳에 놓아두면 마치 죽처럼 끈적한 농도로 개체수가 급격히 불어난다. 이를 건조시키면 녹조류 덩어리만 남는데 분쇄한 다음 적절한 화학공정을 거치면 버스, 트럭 연료로 쓸 수 있는 바이오디젤이 완성된다. 지난해 9월 도요타는 프리우스 하이브리드카에 녹조류 바이오디젤을 넣고 미국대륙을 횡단하기도 했다.
이처럼 녹조류를 이용한 오일 양산이 기술적 가능성을 보이자 대규모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
지난 2008년 빌 게이츠 MS 회장은 미국의 녹조류 바이오연료기업인 사파이어 에너지에 1억달러를 투자했다. 이듬해 엑슨모빌사는 바이오연료 분야에 6억달러 투자 계획을 밝혔다. 요즘 멕시코만 유전 유출로 곤역을 치르는 BP와 다우, 세브론과 같은 거대 석유업체들도 녹조류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에너지 신생기업에 뭉칫돈을 투자하고 있다.
미세 녹조류는 염분이 약간 있는 물에서 더 잘 자라기에 농작물이 자라기 힘든 간척지나 황무지에서도 대량재배가 가능하다. 미국과 호주처럼 국토가 넓은 나라는 거대한 녹조류 농장 건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매년 농사를 지어 식량을 얻듯 석유도 해양식물을 재배해서 얻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바이오연료의 진화. 육상에서 바다로=지난 2000년대 세계 각국은 대체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해 옥수수, 유채, 사탕수수와 같은 농작물로 바이오연료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사람과 가축이 먹을 식량을 수송용 연료로 활용한 결과는 좋지 못했다.
친환경 바이오연료로 질주하는 자동차가 늘어날수록 식료품과 사료값이 올라갔다. 지구 한편에선 기아문제가 여전한데 자동차, 비행기 연료 때문에 소중한 먹을거리를 낭비하는 게 말이 되냐는 도덕적 비난이 거셌다. 바이오연료의 수익성이 높아지면서 멀쩡한 열대우림을 깎아내고 기름을 짜내기 위한 농작물을 심는 사례도 생겨나 오히려 환경을 파괴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육상계 농식물은 지속가능한 바이오연료원으로 부적합한 측면이 많으며 이제는 바다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에너지 효율 측면에서 육상식물은 해양식물의 경쟁상대가 못 된다. 육상식물은 중력을 극복하는데 에너지를 많이 쓰지만 수중에 떠있는 해상식물은 그럴 필요가 없다. 따라서 조류의 CO2 포집량은 곡물에 비해 훨씬 많다. 바닷속에서 자라는 조류로 바이오연료를 추출하는 연구는 지난 1980년대부터 시작됐지만 그동안 높은 생산비용 때문에 상업화가 지연됐다.
하지만 석유자원의 고갈이 가시화되고 해양 바이오연료가 유력한 대체에너지원으로 부각되면서 상황이 급변하는 상황이다.
우뭇가사리와 같은 거대조류에서 미세한 녹조류까지 모든 조류(Algae)는 넓은 바다에서 쉽게 건질 수 있어 재료값이 저렴해 경제성이 뛰어나다. 식량수급에 지장을 주지 않고 삼림을 파괴하지도 않는다. 또 육상식물보다 성장속도가 월등하고 1년 내내 몇 번씩 수확할 수 있다. 해조류 바이오 에탄올 생산 기술은 현재 대종을 이루는 옥수수, 사탕수수 등 곡물 유래 바이오 에탄올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완벽히 해결할 수 있다.
◇해양 바이오연료의 미래= 오는 2020년대가 되면 우리나라 해안가에 위치한 화력발전소 옆에는 대규모 바이오연료공장이 생겨나게 된다. 화력발전소의 배기가스에는 약 10%의 CO2가 섞여 있는데 여기서 미세조류를 키우면 온실가스도 줄이고 친환경에너지도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그동안 쓰레기 취급을 받던 바닷속의 온갖 조류식물들이 트럭째로 공장라인에 실려간다. 공장 한쪽에선 유조차들이 줄지어 바이오연료를 담아 도시로 운송한다. 주유소에 가면 바다에서 뽑아낸 바이오 에탄올, 디젤을 함유한 친환경 재생연료 ‘시 오일’(Sea oil)’을 판매한다는 광고판이 보일 것이다. 운전자들은 국제유가가 크게 올랐지만 해양 바이오연료가 대량양산된 덕분에 자동차를 몰게 됐다면서 안도할지도 모르다.
우리나라는 국토면적과 바이오매스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해양에서 바이오원료원을 구할 필요성이 절실하다. 따라서 조류를 이용한 해양 바이오연료의 자급생산체제를 되도록 일찍 갖추는 것이 국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해양 바이오연료 실용화를 위해 원재료의 안정된 공급처를 확보하는 과제도 중요하다. 바다는 무한히 넓지만 바이오연료 생산에 적합한 품종의 조류가 잘 자라는 해역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경쟁국이 손대기 전에 선점할 필요가 있다.
바이올시스템즈는 우리나라 인근 바다에서 바이오 알코올 대량양산에 필요한 홍조류 물량을 충분히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하에 지난해 7월 필리핀 보홀주와 100만㏊의 해수면을 75년간 무상임차하는 양해각서를 교환했다. 회사 측은 이론적으로 이곳의 해수면 전체에 양식시설을 설치하고 홍조류(우뭇가사리)를 대량양산하면 우리나라의 휘발유 수요를 모두 충족할 자원을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21세기 바다는 인류에게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석유 이후의 차세대 대체에너지까지 제공하는 풍요로움을 선사할 전망이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