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현대자동차에 차체 부품을 공급하는 성우하이텍에서 지난 28일 파업사태가 터지면서 중국에 진출한 한국 업체도 더 이상 노사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다행히 성우하이텍이 근로자 임금을 15% 인상하는 것으로 급한 불을 꺼 30일부터 조업이 재개됐지만 한때 베이징현대차 완성차 생산라인이 선 것은 물론이고 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1ㆍ2차 협력업체 라인도 잇달아 가동이 중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애플 아이폰 등을 생산하는 대만계 팍스콘 선전 공장에서 투신자살이 멈추지 않는 데다 일본 혼다자동차 광둥성 포산 공장 파업 장기화 조짐 속에서 한국계 기업까지 파업사태에 휘말린 게 전해지면서 업계 전체가 술렁였다.
중국 중앙정부에서도 팍스콘 근로자 연쇄 자살사건 보도를 자제하도록 하는가 하면 장더장 부총리가 현장으로 급파돼 조사에 들어가면서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에선 자칫 불똥이 옮겨 붙을까 전전긍긍하던 차였다.
1월 23일 이후 4개월간 근로자 13명이 투신 등 자살을 시도해 10명이 사망한 팍스콘 선전 공장에 대해선 모기업인 훙하이그룹이 임금 20% 인상안을 내놨다. 파업 중인 일본계 혼다 포산 공장에서는 혼다 측이 본사에서 고위급 관계자를 급파해 근로자들과 협의에 나섰다.
하지만 봇물이 터진 중국 내 근로자 욕구를 다 맞출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성우하이텍처럼 100% 외국계 단독법인의 경우엔 중국인 근로자의 의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노무관리가 적절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차별화한 인센티브 지급이 오히려 생산현장 근로자의 `평등의식`을 건드려 쌓였던 불만을 폭발시킬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자동차 부품업계 한 관계자는 "중국 측과 합작으로 설립된 회사는 노무관리나 대관업무 등 민감한 문제를 중국 측 파트너가 맡아 처리하는 경우가 많아 괜찮지만 단독 외국 법인은 관행이 달라 종종 노사 갈등이 발생한다"고 전했다.
◆ 적기생산체제, 위기 대처 취약
= 성우하이텍은 자동차 골격을 이루는 주요 부품인 범퍼ㆍ철제 빔ㆍ패널 등을 베이징현대차에 공급하는 주요 1차 협력업체다. 이곳에서 차체 부품 공급이 중단되면 베이징현대차 완성차 생산라인은 올스톱될 수밖에 없다.
베이징현대차는 부품 재고를 많이 쌓아두는데 다른 보관장소ㆍ비용부담 등을 줄이기 위해 `적기생산(JITㆍJust in Time)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평시엔 비용을 대폭 절감하는 효자 노릇을 하지만 협력사 부품 조달에 문제가 발생하면 다른 내부적 이유 없이도 생산라인을 세워야 하는 게 부담이다.
베이징현대차에 부품을 납품하는 A사 관계자는 "납품용 재고를 0.6일치 정도만 보유하고 있다"며 "부품업체 상당수가 재고를 하루 분량도 채 갖고 있지 않은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는 "연계성이 강한 자동차업계 특성상 완성차 생산라인이 서면 다른 공장으로 연쇄적 파급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근로자 1900여 명이 참여해 14일째 이어진 혼다 포산 공장 파업의 경우도 변속기ㆍ엔진 등 공급이 중단되면서 혼다와 광저우자동차가 합작해 어코드 오디세이 등을 생산하는 광치혼다차 둥펑혼다차 등 관련 완성차공장 4곳이 멈춰섰다.
◆ 지각벌금 엄한 노무관리 도마에
= 혼다 포산 공장 파업은 혼다 측이 중국 내 자동차 생산량을 65만대에서 2012년까지 83만대로 늘리기로 하면서 일은 급증했지만 임금은 낮아 촉발됐다. 근로자는 1000~1500위안가량인 월급을 1000위안 올려 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중국 공장지대 근로자는 평균적으로 800~1000위안 정도를 월급으로 받아가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이 정도 돈으론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토ㆍ일요일도 없이 잔업ㆍ휴일 추가 근무를 해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형편이다.
특히 팍스콘 등 대만계 기업 공장 근로자는 지각을 하면 1분당 10위안을 벌금으로 공제해 온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임금이 인상되면서 벌금도 같이 올려 근로자 불만이 팽배했다.
◆ 근로자 의식 변화 못 맞춰
= 최근 중국 내 공장에서 빈발하는 자살이나 파업에 대해 전문가들은 근로자 연령층이 낮아진 게 적잖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종전엔 전자부품업계 근로자 가운데 1960년대생이나 1970년대생이 많았지만 이젠 바링허우(1980년대 출생)ㆍ주링허우(1990년대 출생)가 주류다. 팍스콘 선전 공장만 해도 종업원 42만여 명 가운데 85%가 바링허우ㆍ주링허우 농민공이다. 정준규 KOTRA 상하이사무소 차장은 "신세대 농민공은 휴대폰ㆍ인터넷 등 미디어 소비 수준이나 인권의식이 높아져 머리는 깨었지만 금전적으로는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 독립노조 결성 주장 고개
= 그동안 수면 아래 잠복했던 중국 진출 외국계 기업 내 열악한 노동조건ㆍ근로관행이 노조 조직 부재 때문이란 지적이 고개를 들었다. 왕샹첸 중국노동관계학원 교수는 "고용주에게서 자유로운 강력하고 독립적인 노동자 조직을 결성하는 게 해결책"이라고 진단했다.
지금도 중국 내 기업엔 `공회`라는 근로자 조직이 있지만 노동운동 대신 공산당의 지침을 학습ㆍ전파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노조 활동보다 회사와 협의창구 기능이 강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잇따른 근로자 자살과 파업 등 노사분규로 노조 결성 주장이 힘을 받기 시작하면서 중국 진출 이후 무노조 이점을 누리던 외국계 기업들로선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특히 노조 없이도 파업이 벌어지는 마당에 강력한 노조까지 결성되면 기업들로선 설 땅이 더 좁아질 가능성이 커서다.
[매일경제 베이징 = 장종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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