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이건희 회장의 베팅, 메모리 프레임 바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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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 hjyoo@etnews.co.kr

 지난달 22일 하이닉스 1분기 실적 발표장에 모인 애널리스트들은 권오철 사장을 비롯한 하이닉스 임원에게 향후 메모리 가격 동향에 대한 문의를 쏟아냈다. 질문 요지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한 D램 가격 상승으로 D램이 전체 PC 재료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선에 도달했는 데 과연 가격이 더 오를 여지가 있는지, 만약 더 오른다면 PC 업체들이 메모리 용량을 줄이지 않을 지에 대한 것이었다. 하이닉스는 “지난 2005년에 최대 14%까지 D램 비중이 높아진 적이 있다”고 지난 역사까지 언급하며 긍정적인 모습이었으나 애널들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메모리 반도체에 대해선 긍정론과 부정론이 늘 교차한다. 긍정론은 메모리 사용처가 계속 확대되고 채택 용량도 커져 시장이 꾸준히 성장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PC에 주로 사용됐던 메모리는 최근 스마트폰, 아이패드 등으로 용도가 확대되고 있다. 스마트폰에 사용되는 D램의 평균 용량은 지난해 123MB에서 5년 뒤인 오는 2014년에는 1.3Gb로 10배 이상 증가할 전망이다. 스마트폰의 낸드플래시 탑재량도 해마다 두 배씩 커지고 있다.

 반면 메모리에 대한 부정론은 수요 확대 못지 않게 가격하락 추이도 가파르기 때문에 성장성이 작다는 것이 역사적 경험이다. 실제로 지난 1995년 430억달러에 이르렀던 D램 시장 규모를 그 이후 한번도 돌파한 적이 없다. 지난해에는 140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공급부족→가격상승→투자확대→공급과잉→가격하락으로 이어지는 실리콘 사이클이 가장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시장이 D램이다. 메모리 시장 성장을 견제하는 세력들도 있다. 세계 반도체 1위 기업인 인텔과 대형 PC기업들이 그들이다. 지난 1984년 일본 메모리 업체들의 공세에 D램 사업에서 철수한 인텔은 1995년 윈도95 출시로 PC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큰 기회로 여겼다. 그러나 메모리 부족과 이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인텔의 기대만큼 PC 시장은 성장하지 못했고 그 과실을 메모리 기업들이 누렸다. 안정적인 D램 공급이 중요한 성장기반임을 알게된 인텔은 이후 특정 기업이 D램을 장악하지 못하도록 후발 D램 기업을 눈에 안보이게 지원한다. 인텔은 지난 2006년 마이크론과 합작해 플래시메모리 제조기업인 IMFT를 설립하기도 했다. 인텔과 마이크로소프트의 힘을 뼈저리게 경험한 PC업체들도 메모리 분야에서 특정기업의 독주가 반가울 리 없다. PC기업들 역시 후발 메모리 기업들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다는 게 업체 정설이다.

 삼성전자 이건희 회장이 화성 반도체 사업장을 방문한 지난 17일 메모리 9조 등 총 18조원에 이르는 사상 최대 시설투자를 발표했다. 2위 기업과의 격차를 확실히 벌려 시장에 순응하는 ‘천수답’ 사업에서 시장과 주위 여건에 구애받지 않는 ‘관개농경’으로 바꾸겠다는 뜻이다. 관개 농경을 위해 올해뿐 아니라 앞으로도 엄청난 투자가 불가피하다. 타 사업부의 질시나 내부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때로는 인텔이나 거대 PC 고객과도 눈에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할지도 모르겠다. 과연 베팅할 순간인가. 이건희 회장의 답은 ‘Yes’ 인 듯 싶다.

유형준 반도체디스플레이팀장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