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소 소프트웨어 기업 간담회에 갔더니 흔히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지칭하는 상생을 서로 ‘상(相)’자가 아니라 상전을 말할 때의 윗 ‘상(上)’자라고 얘기하더라. 거의 ‘횡포’라는 말까지 나왔다.” 지난 3월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간담회에서 대기업 총수들에게 쏟아낸 쓴소리다.

 # “더 이상 이런 자리에는 참석하지 않고 싶다. 상생하자고 손을 내밀어도 잡지 않고 공개적으로 망신을 준다. 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정부가 주선한 크고 작은 SW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대기업 정보기술(IT) 서비스 업체 CEO나 임원들의 하소연이다.

 우리나라 SW업계 대·중소기업 상생은 아직 먼 이야기다. 수년째 건전한 시장생태계를 위한 선결과제로 꼽혔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최근 문제해결 노력이 가시화되면서 감정싸움이 더욱 첨예해지는 양상이다.

 올해 SW 대·중소기업은 연초부터 상생을 다짐했다. SW분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변하는 한국IT서비스협회와 한국SW산업협회가 처음으로 합동 신년회도 가졌다.

 지난 1월 말에는 삼성SDS·LG CNS·SK C&C·포스코ICT의 이른바 ‘IT서비스 빅4’가 그동안 비공개로 해온 ‘연간 SW 수요 및 구매전략’을 사전에 일괄 공개하기로 해 전향적인 화해무드도 형성됐다.

 하지만 공공사업 입찰현장이나 비즈니스 일선에서 여전히 체감온도는 냉랭하다. 특히 올해 들어 진행된 u시티 등 대규모 공공입찰 프로젝트에서 대기업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면서 중견·중소업체의 불만은 다시 표출됐다. 저가 수주 이후 손실을 중소업체에 전가하려는 움직임도 여전하다고 중소업체들은 토로한다.

 사정이 이쯤되자 지경부는 ‘SW강국 전략’에 공공입찰시 대·중소기업 컨소시엄에 가산점을 주는 방안까지 포함시킨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진정한 상생이 시작되려면 강자인 대기업이 먼저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면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갑을’ 관계가 명확한 SW 산업생태계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올해 초 밝힌 ‘연간 구매전략’을 하루빨리 공개하는 등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불공정 하도급 관행도 전향적으로 개선할 필요도 있다. 또 맏형 격인 대기업이 앞장서고 중소기업도 힘을 합쳐 저가경쟁을 부추기는 불합리한 입찰제도를 함께 극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신뢰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선진국의 경우 중소기업을 단순 하도급 관계가 아닌 자본과 기술, 정보 등을 공유하는 동반자로 인식하고 지원하는 것도 반면교사다. 세계 ICT업계 시장구조가 개별 기업 간 경쟁에서 기업 연합세력 간 경쟁으로 바뀌는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IT서비스 대기업이 A부터 Z까지 자체 개발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전문 SW기업의 솔루션을 이용하는 풍토도 선결과제다.

 중소 SW업체들도 ‘사회적 약자’라는 명분만 내세워 대기업이나 정부의 시혜만 바라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상생을 하려면 어느 정도 조건이 맞아야 하는 만큼 중소업체들도 전문성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SW선단형 수출지원 사업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해외진출 경험이 있는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동반 진출할 수 있도록 대·중소 협의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지경부는 이미 이 같은 협의체에 운영비 5000만원씩을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다.

 무엇보다 올해 들어 업계 자발적으로 마련된 ‘IT서비스와 중소 SW업체 상생 TF’를 내실있게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중소업체들도 불만만 토로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안하고 가시적인 ‘윈윈모델’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실질적인 상생 이점을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대·중소기업 가산점 부여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희석됐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현재 과제 선정 작업이 한창인 ‘WBS(World Best Software)’ 프로젝트에 대·중소기업 공동 컨소시엄을 우대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볼 만하다는 게 업계 의견이다.

 이지운 IT서비스협회 전무는 “아직 불협화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합동 신년하례회에 이어 상생TF를 가동하면서 가시적인 성과를 준비 중”이라며 “좋은 상생모델이 나오면 대기업과 중소 전문기업 연합군이 힘을 합쳐 글로벌 SW업체와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