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계열 종합 부품업체인 A사의 구매담당자는 요즘 아예 출근을 협력 부품업체로 한다. 최근 턱없이 모자라는 일반 수동부품을 원활하게 받기 위해서다. 그렇지만 필요한 만큼 맘껏 가져갈 수 없다. ‘번호표(납품계약 순번)’를 뽑아야 할 지경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 세트업체와 이들에 모듈을 납품하는 종합부품업체들이 트랜스포머·트랜스코일·콘덴서 등 생산에 필요한 수동부품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간 재료비를 절감한다고 섣불리 값싼 중국 부품으로 바꿨다가 국내 부품 생산량은 줄고 중국업체의 판가 인상 요구는 증대하는 ‘부메랑’을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트랜스포머·트랜스코일·콘덴서 등 전자제품 조립에 필수인 부품을 생산하는 성호전자, 크로바하이텍, 코일마스터, 삼화전기 등은 갑작스러운 ‘귀빈’ 대접에 어리둥절하다. 한 콘덴서 제조업체 사장은 “우리 생산라인 앞에 부품 경쟁 관계인 대기업 A사와 B사 구매 담당자들이 생산품을 먼저 가져가기 위해 진을 친다”면서 “불과 1년 사이에 세트업체와 부품업체의 처지가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말했다.
부품업체들은 지난해만 해도 ‘찬밥’ 신세였다. 세트와 종합부품업체들이 품질이 국산보다 다소 떨어지지만 값싼 중국산 부품의 조달 비중을 매년 늘리면서 관심 대상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세트와 종합부품업체들은 중국산 부품 조달로 재료비를 절감했지만 공급망 관리가 망가졌다. 경기 회복으로 부품 공급이 부족해지자 중국 부품 업체들은 무리한 수준의 판가 인상을 요구했다. 일부 업체는 부품 공급 중단을 협박할 정도다. 위안화 절상까지 겹쳐 중국산 부품의 매력도 떨어졌다. 이 때문에 국내 부품업체로 다시 눈길을 돌렸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그 사이 사업을 중단하거나 생산 설비를 축소했기 때문이다.
국내 부품업체들이 요즘 라인 가동률을 최대한 높여도 수요에 대응할 수 없다.
세트와 종합부품업체들은 애가 탄다. 심지어 원·부자재를 직접 구매해줄 테니 주문자생산방식(OEM)으로 공급해달라는 업체도 있을 정도다. 삼성전자의 구매 담당 관계자는 “월드컵 특수 등으로 인해 한국산 전자제품의 글로벌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할 것”이라며 “수동부품을 생산하는 협력 업체들이 생산 규모 증설에 적극적이지 않아 우리 같은 구매 담당자들은 피가 바짝 마를 지경”이라고 말했다.
부품업체들의 상황은 다르다. 한 트랜스코일 업체 사장은 “당장 공급부족으로 수익이 많이 나지만 세트업체를 믿고 투자를 진행하기 어렵다”면서 “상황이 달라져 중국업체들이 파격적인 가격을 제시하면 (세트업체들이) 언제 물량을 줄이거나 끊어버릴지 알 수 없는 일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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