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유인촌 장관과 아이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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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6일 문화부 브리핑 룸에서 좀 별난 장면이 연출됐다. 전자출판산업 육성 방안과 관련해 간담회를 자청한 유인촌 문화부 장관이 종이 형태 보도자료 대신에 얼리어답터를 중심으로 인기를 끈 애플 ‘아이패드’를 활용했다. 유 장관은 이 자리에서 “종이가 필요 없고 가볍고 좋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장관이 직접 들고 나와서인지 네티즌의 관심은 정작 중요한 브리핑 내용보다 온통 아이패드에 쏠렸다. 급기야 전파 인증을 받지 않아 아직은 불법인 아이패드를 장관이 직접 시연했다며 적잖은 논란이 벌어졌다. 불법 논란은 기업이 구입한 제품을 정부가 잠시 빌렸다고 해명하면서 일단락됐다.

 문화부는 아이패드를 활용해 전자책(e북)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엉뚱한 곳에서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사실 이번 건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좀 서글픈 사실은 우리 전자책 산업의 현주소를 그대로 반영했다는 점이다. 전자책은 정보 인프라가 튼튼한 IT강국 환경에 비춰 볼 때 오래전부터 주목받는 분야였다. 2007년 아마존 ‘킨들’과 비슷한 시기에 단말기가 나올 정도로 관심도 높았다. 문제는 시장이었다.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간 것이다.

산업계에서 추산하는 지금까지 판매된 전자책은 대략 1만대 수준. 최근 관심이 높아진 상황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낮다. 더 큰 문제는 초기와 비교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말기 가격이 절반 수준인 20만원대로 떨어지고 종류도 두 배를 넘겼지만 여전히 시장은 꿈쩍도 않고 있다. 소비자도 선뜻 주머니를 열 분위기가 아니다. 반면에 미국은 이미 2008년 100만대를 넘어선 데 이어 지난해 300만대를 돌파했다. 올해 보수적으로 잡아도 500만대를 넘길 것으로 낙관했다. 이와 비교하면 국내 보급 대수는 채 1%도 되지 않는 참담한 성적표다.

 기대에 못 미친 침체 이유를 놓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조악하고 비싼 단말기 문제부터 부족한 콘텐츠, 출판업계의 보수적인 관행까지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일부에선 우리 국민은 근본적으로 책을 읽지 않아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우울한 지적까지 나왔다. 부분적으로 맞을지 모르지만 정작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바로 비즈니스 모델이다. 히트 상품의 조건은 이미 제품에서 비즈니스 모델 중심으로 바뀌었다. 좋은 제품이 아니라 비즈니스 모델이 탄탄해야 소비자가 움직이는 시대다. 최근 성공담으로 떠오른 트위터·페이스북에서 아이폰·아이패드·킨들까지 따지고 보면 모두 이면에는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 자리잡고 있다. 비즈니스 모델은 결국 기업 생태계와 직결된다.

 전자책도 마찬가지다. 성능 좋은 단말기, 풍부한 콘텐츠, 유통 채널 구축 모두 좋은 이야기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조에서 유통, 콘텐츠까지 전체 생태계를 바뀐 환경에 맞추는 게 급선무다. 산업계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상생 모델을 먼저 고민해야 한다. 소비자가 ‘아이패드’라는 단말기를 볼 때 정부와 산업계는 ‘비즈니스 모델’을 먼저 봐야 하는 이유다.

 강병준 생활가전팀장 bjk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