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게임의 법칙을 바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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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보기술(IT) 업계에 저가수주 논란이 한창이다. 기술은 앞섰지만, 가격에서 뒤집혔다는 흥분된 목소리가 요란하다. 이달 시작한 금융권 금융자동화기기(ATM) 입찰에서 불과 10여일 만에 낙찰가가 20%나 급락했다. 사상 처음 국산 ATM이 채택됐지만, ‘덤핑’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IT서비스 업계에선 저가수주 신경전이 결국 소송전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저가수주 잡음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요즘들어 그 사례가 부쩍 늘어났다. 그만큼 IT 경기가 어렵다는 방증이다. 한편으로는 가격이 당락을 가르는 게임의 법칙이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저가수주는 또 다른 게임의 법칙을 낳는다. 낮은 가격에 맞춘 ‘품질 저하의 법칙’이다.

업계엔 ‘저가 낙찰 땐 중소 협력업체만 죽어난다’는 게 정설이다. 대기업은 공공입찰 하한선인 예정가격의 60%로 수주해도 자신의 이윤을 챙긴다. 가뜩이나 적은 사업비에 대기업 몫마저 떼주고 나면 하도급업체는 ‘밑지는 장사’를 할 수밖에 없다. ‘밑지는 장사꾼’이 어디 있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익이 남지 않으면 하도급을 포기하면 되지 않냐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하도급을 포기하면 당장 직원들을 놀려야 하는 중소업체 사장들에겐 한마디로 ‘복장’ 터지는 소리다.

문제는 손해가 예고될 때 각종 편법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금이 낮은 저급 개발자를 투입하는가 하면 계획보다 낮은 규격을 적용하기 일쑤다. 저가 수주가 부실 개발로, 또 산업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악순환의 발단은 저가 경쟁을 암묵적으로 조장하는 평가기준이다. 정부는 가격보다 기술 위주의 평가를 위해 입찰 가격 하한선을 60%에서 80%로 올리자는 전문가들의 제안을 몇 년째 무시 중이다. 당장 눈앞의 예산 절감이 중요하지, 미래 산업경쟁력 따위는 뜬구름 잡는 소리라는 식이다.

증기 자동차를 세계 최초로 개발한 영국은 155년 전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이란 희한한 법칙을 만들었다. 마차가 55m 전방에서 붉은 깃발을 꽂고 달리면 자동차는 그 뒤를 따라가야 했다. 자동차의 최고 속도는 시속 6.4km로 제한됐다. 기존 마차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보수주의가 명분이었다. 결국 영국은 자동차산업의 주도권을 이웃나라 독일에 넘겨줘야 했다.

애플 아이폰은 정반대 케이스다. 하드웨어 중심의 휴대폰 비즈니스 모델을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했다. 게임의 법칙을 바꾸면서 휴대폰 시장의 새내기에 불과했던 애플은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다시 우리의 자화상을 보자. 업체들은 저가수주 공방 끝에 법정다툼을 불사한다. 보다 못한 정부 관료는 ‘노이즈(잡음)를 일으키지 말라’며 경고까지 했다고 한다. 불합리한 법칙에 맞서기보다 변죽만 울리는 기업인들,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덮기에만 급급한 관료들. 이 게임의 법칙의 결말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 영국의 자동차산업일까, 애플의 아이폰일까.

장지영 IT서비스팀장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