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 중지 요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당신을 제거할(cut you off) 거요.”
영국 텔레포닉스와 맺은 집 전화 이용계약을 깬 뒤 다른 통신사업자로 옮기려던 한 여성 소비자가 깜짝 놀랐다. “계약을 해지하고 싶다”는 그녀의 요청에 텔레포닉스 남자 직원이 거의 협박에 가깝게 대응한 것. 그녀가 용기를 내어 “지금 협박하느냐”고 되묻자, 그 직원은 “협박이 아니라 전화선을 끊겠다는 것(I will turn your phone lines off)”이라고 얼버무렸다.
지난해 8월 영국 방송통신규제기관 오프컴은 이 같은 텔레포닉스의 행위를 ‘심각한 위반(Serious breaches)’으로 규정하고 법에 정한 최다 벌금인 18만3898파운드(약 3억2800만원)를 부과했다. “즉시 시정하라”는 명령도 함께 내렸다.
텔레포닉스는 그러나 지난 2월까지 7개월여간 벌금을 내지 않았다. 고객 이탈을 막으려는 뜻이 강한 나머지 무리한 계약 해지방어도 여전했다. 시정명령조차 지키지 않은 것이다. 결국 오프컴은 텔레포닉스를 고등법원에 제소했다. 소비자 편익을 훼손한 통신사업자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소비자를 위한 오프컴의 책임 행정 의지는 ‘통신요금 비교 인증제’에도 오롯이 담겼다. 너무 복잡한 나머지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려워 결국에는 사업자에게 유리한 약정을 맺게 되는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통신요금 차이를 직접 비교해주는 전문 인터넷 사이트를 오프컴이 인증해준다. 실제 ‘심플리파이디지털(www.simplifydigital.co.uk)’, ‘브로드밴드초이스(www.broadbandchoice.co.uk)’, ‘빌모니터(www.billmonitor.com)’ 등에서 인터넷·전화·디지털TV 요금을 소비자 형편에 맞춰 비교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는 이동전화로 매월 음성통화 □분과 문자메시지 □건을 쓴다’는 문장의 ‘□’ 안에 숫자만 써넣으면, 사업자·상품별로 가장 싼 요금제를 고를 수 있는 체계다.
한국 방송통신위원회가 벌금을 내지 않거나 시정명령을 무시하는 사업자를 법원에 제소한 사례는 아직 없다. 통신사업자의 준법 정신이 투철(?)하기 때문이겠지만, 법에 정한 최다 벌금이 부과된 사례도 드물다. 위반행위를 조사할 때 잘 협조하거나 깊이 반성(읍소)하면,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에 정한 대로 ‘필수적 가중을 거친 금액의 50%까지’ 깎아주는 경우가 많아서다. 통신요금 가격 비교 사이트를 인증해준 적도 없다. 방통위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와 함께 ‘이동전화 최적요금제 조회 사이트(010.ktoa.or.kr)’를 운영하되, 사업자 간 비교는 해주지 않는다.
방통위가 오프컴처럼 소비자를 위해 직접 팔 걷고 나서기(소송)까지는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할 것이다. 다만, ‘방송과 통신 이용자의 복지와 보편적 서비스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방통위설치법에 따른 운영원칙에 더욱 충실하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맡아서 해야 할 임무를 정해진 기간에 지는 것, 무책임하지 말아야 한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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