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Image](https://img.etnews.com/photonews/1002/100210050838_932741690_b.jpg)
거실의 TV로 영상통화까지 하는 시대가 왔다. LG전자와 파나소닉이 다음달부터 세계 최대의 인터넷 전화업체 스카이프와 손잡고 HD급 영상통화를 지원하는 TV를 시판한다. 이제 TV는 안방극장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활짝 열린 창으로 변하고 있다. 넓고 투명한 창이 달린 거실은 전망이 무척 좋지만 밖에서도 내부가 훤히 보인다는 사실에 주의해야 한다.
“워싱턴에 폭설이 내려 도시기능이 사실상 마비됐습니다.”
마감뉴스를 시청하던 아버지는 워싱턴에 폭설이 왔다는 소식에 문득 미국 동부에 사는 둘째 아들의 안부가 걱정됐다. 아버지는 국제전화 001을 하는 대신 TV 리모컨을 찾아서 빨간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소파에 모여 앉은 둘째 아들과 며느리, 손주의 모습이 TV화면에 선명하게 뜨고 가족 간의 정다운 대화가 시작된다.
TV와 영상통화의 만남. 이것은 평범한 IT융합상품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방법을 뒤바꿀 진짜 혁명이다.
지난달 CES에서 인터넷전화업체 스카이프는 고선명 영상통화가 가능한 HDTV를 공개해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LG전자와 파나소닉이 다음달부터 생산할 브로드밴드 TV는 본체에 카메라, 인터넷 접속모듈, 스카이프 SW를 장착한 덕분에 VoIP기반의 음성통화, 영상통화가 자유롭다. 그동안 PC환경에서 가능했던 무료 인터넷 전화를 TV의 대화면으로 끌고 온 셈이다.
LG전자는 TV환경에서 PC용 스카이프 SW를 구현하는 회로설계, 간단한 리모컨 조작으로 서비스를 쉽게 사용하는 전용 UI도 직접 개발해 TV와 영상통화의 융합트렌드를 선도하게 됐다. LG전자의 온라인 콘텐츠 서비스인 넷캐스트(NetCast)와 스카이프 아이콘, 대화상대 아이콘을 차례로 클릭하면 영상통화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최초 사용 시 스카이프 ID를 한 번만 등록하면 TV 전원을 켤 때마다 영상통화 서비스에 자동 로그인되며 상대목록이 아이콘으로 표시된다. 브로드밴드 TV는 같은 TV 기종은 물론이고 PC, 휴대폰, 일반전화 등 다양한 기기와 교신이 가능하다. 최다 24명과 음성 콘퍼런스 콜도 가능하다.
LG전자와 파나소닉은 마이크 일체형 HD 웹 카메라를 TV에 장착해 소비자가 별도로 헤드세트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TV를 보다 영상통화가 수신되면 통화 상대방이 보이는 통화모드로 자동 전환되고 음성 통화를 수신하면 TV는 무음 모드로 바뀌게 된다. LG전자는 다음달부터 브로드밴드 TV에 스카이프의 인터넷 전화 서비스를 기본 기능으로 탑재해 유럽, 미국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스카이프가 내장된 HDTV의 최대 장점은 매우 선명한 HD화질(1280×720 해상도, 30프레임)로 통신비 걱정 없이 무료 영상통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기존 영상회의 시스템은 장비가격만 수천만원인 제품이 많았다. 결국 대기업, 공공기관처럼 자금력을 갖춘 대형조직에서만 영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했다. 만약 집집마다 보급된 TV로 원격지 상대방의 생생한 모습을 보게 된다면 영상회의 서비스의 진정한 대중화 시대가 열리게 된다. 스카이프SW, 카메라를 장착한 브로드밴드 TV의 판매가격은 동일한 규격의 일반TV에 비해 10∼20% 높은 합리적 수준에서 억제될 전망이다.
전 세계 5억2100만명의 스카이프 가입자 중에서 비슷한 가격이면 더 편리한 영상통화가 가능한 HDTV를 구매할 잠재수요는 차고 넘친다. 따라서 TV+웹캠은 2010년 가전업계에 신제품 트렌드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TV영상통화의 걸림돌
혹자는 영상통화를 통한 지나친 자기노출을 꺼리는 대중의 심리 때문에 고선명 영상통화를 지원하는 신형 TV의 시장수요가 낮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껄끄러운 경쟁자, 회사 상사와 통화할 때 굳이 TV로 얼굴을 마주치는 유사 대면접촉을 선호할 사람은 드물다.
하지만 사무실이 아닌 가정의 통화환경을 가정해보자. 사생활 노출의 부담이 덜한 가족, 친지, 애인끼리 통화비중이 훨씬 더 높다. 친밀한 사이에는 편안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 TV 건너편의 상대와 눈을 맞추는 대화법이 더 매력적일 수 있다.
조시 실버맨 스카이프 대표는 “스카이프 영상통화의 인기는 현재 스카이프 가입자 간 통화의 평균 34%를 차지할 정도로 최근 몇 년간 대폭 증가해왔다”면서 “가족 및 친구들과의 스카이프 영상통화를 보다 크고 선명한 화질로 즐기려는 수요에 대응해 스카이프 내장 TV를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스카이프 영상통화가 비즈니스 목적보다는 친밀한 사람들을 더 연결시키는 역할에 무게를 둔다고 밝힌 것이다.
일부에선 한국이 세계 정상의 인터넷 속도를 자랑하지만 브로드밴드 TV를 설치해도 1280×720 해상도, 초당 30프레임의 영상통화 목표치를 구현하긴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와 관련해 스카이프 본사와 공동 TV 개발에 참여한 김형진 LG전자 부장은 “국내 아파트의 유선랜 환경에서는 HD화질로 20프레임 이상 양방향 전송이 가능하다”면서 화질에 관련된 우려를 일축했다. 지난 12월 출시된 윈도용 스카이프 4.2 베타는 인터넷 속도가 빠르고 최신 PC사양일 경우 초당 30프레임의 HD화질 전송이 가능하다. 통신대역폭의 확대추세를 고려할 때 향후 2∼3년 내 TV영상통화의 기술적 걸림돌은 거의 해결될 것으로 낙관할 수 있다.
◇TV와 영상통화의 융합파장
TV와 영상통화의 융합에 따른 가장 큰 변화는 TV의 성격자체가 바뀌는 것이다. 이제 TV는 단순히 세상을 보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을 보여주는 노출도구의 역할을 겸하게 된다.
몇 년 전 LCD패널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고 소개한 삼성SDI의 광고카피는 매우 신선하고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었다. 앞으로 영상통화와 결합한 TV는 ‘세상과 소통하는 또 하나의 창’으로 표현해야 타당하다. 고화질의 일대일 영상채널이 열리면 홈쇼핑, 원격교육과 같은 분야에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쉽게 구현할 수 있다.
TV 영상통화의 확산은 대기업 위주의 영상회의 시장이 대중화되는 결정적 계기로 작용할 전망이다. 집마다 설치된 TV로, 거의 공짜에 가까운 비용으로 누구와도 HD급 영상통화가 가능해지면 기존 영상회의 시장은 가격파괴 바람이 불가피하다.
TV 기반의 영상통화는 조작의 편리함과 뛰어난 HD화면, 가격경쟁력 덕분에 중장기적으로 사람이 사람을 만난다는 개념을 변질시킬 가능성이 높다. 사실 HD급 화질로 초당 20∼30프레임으로 비치는 상대방 영상을 접하다 보면 최소한 시각정보의 충실도에서는 실제 면대면 커뮤니케이션과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TV리모컨 버튼만 누르면 미국의 아들, 대전의 큰 딸, 친구가 자랑하는 새 집의 거실 사이에 언제라도 시원한 창문이 열린다. 굳이 친밀한 사람과 인간적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긴 거리를 이동할 필요성이 있는지 회의감이 들 법도 하다.
요즘 나오는 휴대폰 대부분에 카메라가 달려 있듯 몇 년 뒤에는 카메라가 내장된 TV제품군의 종류와 판매비중이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다. 우려되는 부작용은 실내 모습이 생방송되는 줄 모르고 TV 앞에서 사적인 모습을 노출할 가능성이다. 전망 좋은 방은 밖에서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쉽다는 점을 사용자들이 항시 유념해야 한다.
배일한기자 bail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