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차전지 글로벌 1등 노린다
2차전지가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등 우리나라 IT수출 삼총사를 이을 제4의 수출 병기로 커나가고 있다. 글로벌 시장 1위 고지를 향한 도전이 거세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IT에서만 590억달러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흑자를 일궈냈다.
2008년 9월 리먼사태로 세계 주요 국가들이 금융위기로 독감에 걸려 있는 동안, 우리 경제는 빠른 회복세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이 바탕에 수출 주력품인 반도체·디스플레이·휴대폰 삼총사가 있었다. 특히 디스플레이 패널은 글로벌 침체기에도 세계 시장 점유율 48%라는 확고한 시장지배력을 발판으로 수출 회복을 견인했고, 반도체는 D램 분야 56.9%의 세계시장 점유율로 휴대폰을 제치고 2007년에 이어 IT 수출 1위 품목이 됐다. D램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8년 대비 8.1%나 높아진 것이다. 휴대폰은 제품 라인업과 신흥시장 공략 강화로 사상 처음 세계시장 점유율 30%대에 진입했다. 모두 세계 1위 제품이거나 이에 근접한 우리의 자랑이다.
◇‘2차전지’도 글로벌 1등이 보인다=지난해 우리나라 2차전지 수출 규모는 약 29억달러였다. 이는 반도체나 휴대폰의 10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 2차전지 산업의 경쟁력과 시장 성장세를 감안하면 반도체나 디스플레이에 못지않은 효자 품목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특히 최근 우리나라가 노트북, 휴대폰 등 소형 2차전지 시장에서 일군 성과는 눈부실 정도다.
지난 2007년 전 세계 리튬2차전지 시장점유율은 산요가 21%로 1위, 이어 소니 14%, 삼성SDI 13%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황은 사뭇 다르다.
일본 전지 분야 전문 시장조사 기관인 IIT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삼성SDI는 사상 처음으로 산요를 제치고 선적 출하량 기준으로 세계 1위를 차지했다. LG화학도 14.6%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IIT는 삼성SDI의 작년 3분기 셀 출하량이 1억549만셀을 기록할 것으로 추산했는데, 월평균 출하 규모로 보면 5283만셀로 이는 산요의 월평균 출하량 전망치인 5160만셀보다 앞서는 것이다.
그간 3위였던 소니는 작년 말 15.8%에서 12%대 밑으로 주저앉았다. 물론 4분기에는 산요가 1위를 탈환했지만 10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룬 성과라는 점에서 일본 기업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이 지난 100년 동안 연구개발과 투자로 얻은 전지산업에서의 성과를 LG화학과 삼성SDI 각각 1999년과 2000년에 공장을 세운 후 10년 만에 뛰어넘은 것이다.
◇과감한 투자와 연쇄 공급 사슬이 성공 요인=이처럼 우리나라의 2차전지 산업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대기업의 적극적인 투자가 주효했다.
삼성SDI는 천안공장 건립과 라인 건설에 1999년 5000억원 이상을 투자했고, LG화학도 비슷한 규모의 투자를 단행했다. IMF 외환위기를 겪고 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투자 결정이었다. 반대도 많았고, 모험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있었지만 결국 지금에 와서는 가장 잘한 투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일본 기업이 일찌감치 시장에 진출하면서 단가가 비교적 싼 니켈수소전지를 선택한 반면에 우리 기업들은 고부가제품인 리튬에 집중한 것도 일본을 일부 추월하게 된 이유다.
실제 일본 기업은 당시 업종 간 합종연횡으로 니켈수소전지 개발에 주력했다. 파나소닉과 도요타의 ‘파나소닉EV에너지’, 닛산과 NEC의 ‘AESC’, 혼다와 GS유아사의 ‘블루 에너지’ 등 일본업체가 자동차에 니켈 수소를 적용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최근 산요의 시장점유율이 낮아진 이유는 2005년부터 2007년까지 3년간 대규모 적자를 봤고 차입금도 늘면서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보다 뒤늦은 2000년을 전후로 2차전지사업에 뛰어든 LG화학과 삼성SDI 등 국내 기업은 리튬이온전지로 눈을 돌렸다. 리튬이온전지는 니켈수소전지보다 10∼15% 비싸지만 에너지효율이 50%가량 높다는 점에 주목한 것. 국내 기업의 전략은 적중했다. JP모건은 전기차용 전지 시장에서 리튬이온전지 비중이 올해 16.1%에서 2020년 93.9%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관련 산업의 공급 사슬이 잘 이어진 것도 성공요인으로 꼽힌다. 리튬이온전지 시장에서 일본·한국·중국 업체가 독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동안 2차전지의 주 용도가 IT제품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삼성전자와 LG전자로 대표되는 국가대표 모바일 IT기업이 휴대폰과 노트북 등을 통해 안정적인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일본도 소니와 파나소닉 등 가전 업체들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의 경쟁구도가 말해주듯 우리기업의 지배력과 우월성이 더 컸다.
◇중소전문기업도 시장 성장에 한몫=이처럼 국내 2차전지 양대 기업이 성공적인 시장 진입을 이룬 데에는 음극소재, 양극소재, 보호회로 업체, 분리막 등 중소 전문 업체의 역할도 컸다.
주요 부품과 소재를 일본 등 해외에서 전량 수입하게 되면 가격경쟁력 면에서 일본 기업에 열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엘엔프신소재, 한국유미코아, 대정화학 등 국내 중소 업체가 양극활물질 개발과 생산에 적극적으로 가세했다. 또 소디프신소재, 카보닉스가 음극활물질, 제일모직이 전해질 등을 만들어 내며 시장 성장에 촉매제 역할을 해냈다. 또 파워로직스, 넥스콘테크 등이 2차전지 보호회로를 국산화해 시장에 진입하면서 국내 전지업체도 일본과 대등한 가격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또 이들 기업은 향후 급성장이 예상되는 중대형 전지 분야에 대한 연구개발과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시장 성공의 동반자로서 역할이 기대된다.
여기에 최근에는 중대형 전지 분야 전문기업의 위상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코캄이 미국의 다우코닝과 합작을 이끌어냈고, 이아이지는 인도의 타타자동차를 비롯한 승용차 시장과 상용차 시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중대형 분야는 새로운 도전 과제=국내 기업들이 소형전지 분야에서 급성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차전지의 용도가 자동차·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 등으로 확대되고 있고 미국과 EU 등 선진국 업체가 속속 가세하면서 시장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원자력, 태양광, 풍력이 범국가적 차원에서 에너지 확보를 위한 정책적 필요에 따라 산업규모가 확대되고 있는 것과 달리, 2차전지는 기업들의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할 수 있는 신수종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들의 과감한 대형 투자가 단행되고 있다.
미국은 2차전지 등 신재생에너지사업에 15억달러 투자를 이미 결정했고 일본 역시 자동차 기업과 전지생산 기업, 대학, 연구소 등 22개 기관이 참여하는 차세대 전지개발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여기에 중국은 국가 기술개발 프로젝트인 ‘836 계획’에 자동차용 2차전지를 포함시킴과 동시에 리튬 등 2차전지용 희소 금속을 전 세계적으로 독점하려는 계획을 차근차근 밟아나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 역시 2차전지를 차세대로 먹거리로 키우기 위해서는 R&D 지원과 희소 금속의 확보 등 정부의 정책 뒷받침이 시급한 상황이다.
나아가 전문가들은 차세대 2차전지 산업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는 2차전지에 들어가는 주요 소재의 국산화와 기술화가 필요한 만큼 소재 기업의 육성도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영준 전자부품연구원 전지연구센터장은 “현재 2차전지의 4대 재료인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분리막은 니치아화학, 히타치화성, 우베흥산, 아사히화성 등 일본업체가 장악한 상황”이라며 “국내 기업들의 기술혁신과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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